기획특집

[특집] 「교부들의 성경 주해」 총서 29권 완간 의미와 경과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2-05-10 수정일 2022-05-10 발행일 2022-05-15 제 3294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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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교회 때부터 성경 쉽게 풀어 설명한 교부들의 방대한 문헌
한국교부학연구회, 2005년부터 17년에 걸쳐 원문 번역하고 정리
교회 쇄신·일치의 토대 결실 맺어… “평신도 관심과 후원에 감사”

「교부들의 성경 주해」 전권.

수천 년에 걸친 시간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성경을 읽고 해석했다. 그중에서도 2000여 년의 시간 속에서 존경 받아온 교부들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그 자신이 삶으로 살아가면서 신자들을 위해 풀이한 주해는 현대에도 깊은 감명을 주는 지혜다. 성경을 향한 교부들의 사상과 신앙, 그 지혜의 정수를 집대성한 29권의 방대한 총서 「교부들의 성경 주해」(한국교부학연구회/분도출판사) 총서가 드디어 우리말로 모두 번역됐다. 「교부들의 성경 주해」 완간의 의미와 경과를 살핀다.

■ 원천으로 돌아가는 열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와 죽음, 부활에 이르는 사건 뒤 약 200년 동안 사도들과 그 제자들이 활동하면서 교회의 직무, 성사 등의 모습이 갖춰져나갔다. 이 시기에 이뤄진 중요한 작업 중 하나가 신약성경의 기록과 ‘정경화’(正經化) 작업이었다.

신약성경 기록이 마무리되는 시기부터 활약한 것이 교부들이다. 교부들은 사실상 성경의 첫 주해자이자, 가장 탁월한 주해자였다. 교부들은 신약성경을 비롯해 교회 안에 정경으로 자리 잡은 성경들을 신자들을 위해 쉽게 풀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도시대에서 가까웠던 만큼 교부들의 성경 해설은 사도들에게서 이어온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녹아들어 있었다. 교부들의 성경 주해 자체가 성경과 성전(聖傳)의 아름다운 만남인 셈이다. 삼위일체론, 그리스도론 등 교회의 핵심적인 교의를 정립시켜나가며 신앙을 이끌어온 교부들이 신자들이 성경을 잘 이해하도록 풀어낸 설명은 우리 신앙의 원천을 돌아보게 해주는 열쇠다.

「교부들의 성경주해」 총서는 2~8세기경 활동한 교부들의 성경 주해를 발췌해 신·구약성경 각 장, 절 순서로 정리한 총서다. 미국 워싱턴 D.C. 드루대학교가 주도한 이 총서는 세계 각국에서 내로라하는 석학들의 참여로 엄청난 양의 자료 중에서도 교부들의 사상을 가장 잘 반영하는 핵심적인 주해를 엄선해 모았다. 교부들이 저술한 지혜의 정수를 모은 만큼, 강론·교육 등을 준비하는 사목자나 교부학·성경학·신학 연구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참고자료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총서 편찬 중 가장 염두에 둔 독자는 연구자나 신학자보다도 성경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평신도다. 총서에는 교부들의 논문이나 설교뿐 아니라 편지, 찬가, 수필, 시 등에 이르는 다양한 유형의 글이 담겼다. 이를 통해 교부학이나 신학에 정통하지 않은 이라도 누구나 성경을 읽고 공부하며, 또한 깊이 있게 묵상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우리말로 번역한 총서도 이 목적을 충실하게 따르며 신학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평신도들도 읽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쉬운 글로 다듬어냈다.

총서는 교회 일치에도 기여하는 바가 크다. 교부들의 가르침은 교회가 갈라지기 이전의 교회의 가르침이다. 오늘날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정교회, 개신교 등 그리스도교들은 공통적으로 교부들의 지혜를 배워야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고 있다. 실제로 총서 편찬에는 가톨릭·정교회·개신교의 여러 학자들이 동참했고, 우리말로 번역된 총서에 다른 그리스도교 종파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총서 간행위원이자 번역에 참여한 최원오 교수(빈첸시오, 대구가톨릭대학교 유스티노자유대학원)는 “총서는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설교와 신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교부들의 원천으로 돌아가자는 취지로 편찬됐다”면서 “그리스도교의 공동 유산이기도 한 교부 문헌 중 가장 아름다운 대목이 모인 총서가 교회 쇄신과 일치의 토대가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 17년의 대장정

“우리 연구회가 주도하는 이 프로젝트는 한국 그리스도교의 일치, 성직자들의 설교·강론, 교부들의 성경 해석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신학 모든 분야의 기초를 놓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부학연구회(이하 연구회) 초대 회장이었던 고(故) 이형우(시몬베드로) 아빠스는 2005년 「교부들의 성경주해」 총서 출판을 추진하면서 연구회 회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총서 출판의 의미에 관해 이야기했다. 총서의 가치를 꿰뚫어본 혜안이었지만, 막상 총서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은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일단 29권이라는 방대한 분량. 쪽 수로 치면 1만5000쪽이 넘었다. 2002년 설립해 갓 3년이 된 작은 규모의 연구회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의 작업이었다.

게다가 총서에는 교부들의 글 중 성경 구절에 해당하는 문헌 일부를 인용했기 때문에 단순히 한글로 옮기는 것만으로는 교부들이 전하고자 했던 가르침의 맥락을 표현하기 어려웠다. 이에 각 문헌의 원전을 확인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아울러 교부들의 가르침은 단순히 성경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의와 영성, 전례, 사목 등 모든 신학의 토대가 되는 만큼, 신학적 용어나 교회 용어들도 번역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연구회는 2005년 총서 간행위원회를 구성하고 2006년 사무실을 마련해 선임연구원이 상근하는 번역 출간 체계를 갖췄다. 신학자와 전문 번역가 22명이 번역에 참여했고, 신학교정과 윤문, 교정 교열에 이르는 작업에도 많은 이들의 노고가 들어갔다.

총서를 통일성 있게 번역하기 위해 연구회는 교부들의 인명과 교부들과 연관이 있는 지명들을 정리하고 통일해 용례집을 펴내기도 했다. 연구회가 제작한 용례집은 다른 그리스도교 종파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이런 대장정은 2008년 4월 「구약성서1 창세기 1-11장」에서 2022년 4월 「구약성서11 이사야서 40-66장」에 이르기까지 자그마치 17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총서를 완간한 올해는 연구회가 20주년을 맞는 해이기에 기쁨을 더했다.

연구회 회장 장인산(베르나르도) 신부는 “5년 안에 총서를 모두 출간할 목표를 세웠지만, 맥락 없는 토막글을 번역하고 다듬는 일은 예상보다 어려웠고, 엄청난 번역비와 출판 경비를 마련하는 일도 큰 숙제였다”며 “결국 최초의 계획보다 3배가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많은 분의 노고와 헌신 덕분에 17년 만에 총서를 완성하게 됐다”고 전했다.

총서 번역이 이뤄지는 데는 연구회와 번역진, 출판관계자들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관심과 후원으로 함께했다.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을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후원금을 보냈고, 연구회가 방문한 여러 본당에서 모금에 동참해 준 이들이 있었다. 가톨릭신문사(사장 김문상 디오니시오 신부) 역시 총서 간행 작업에 동참, 총서 번역과 연계해 2009~2014년 신문 지면에 ‘교부들의 성경주해’를 연재하고, 기획기사와 보도를 통해 총서의 중요성을 홍보해 나가면서 전국 신자들이 총서에 관심을 모을 수 있도록 함께했다.

총서 간행위원장을 맡아온 하성수(시몬) 선임연구원은 “총서의 모든 글을 쉽게 다듬어 누구나 교부들의 사상을 접할 수 있도록 한 것에 간행위원장으로서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도움 주신 평신도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