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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성월 특집] 안동교구 여성 공동체 ‘마리아의 울림들’을 가다

이나영 기자
입력일 2022-05-04 수정일 2022-05-04 발행일 2022-05-08 제 3293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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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고 일하는 공동체의 삶… 성모 영성 울려퍼지는 날갯짓되길
1992년 시작된 여성공동체
안동교구 공동체로 공식 인준
회칙 갖고 수도회 준하는 생활

현재 11명… 3곳 시설서 봉사
성소·후원에 대한 관심 절실
‘농촌 선교’ 특화된 수도회 꿈꿔

올해 설립 30주년을 맞은 ‘마리아의 울림들’ 자매들 모습. 이들은 기도·서원·공동체 생활을 하고 회칙을 지키며 살아간다. 마리아의 울림들 제공

눈부신 5월. 날씨는 따뜻하고 하늘은 맑다.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들이 활기를 찾아가는 시기.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을, 교회는 ‘성모 성월’로 보낸다. 교회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삶과 영성을 돌아보고 묵상해 보는 시기다.

안동교구 여성공동체 ‘마리아의 울림들’(지도 안상기 미카엘 신부)에게 올해 5월은 더 특별하다. 공동체 설립 30주년을 맞은 해이면서, 새로 지어 올리는 보금자리의 완공(9월 예정)을 앞둔 시기. 이들이 맞는 성모 성월은 어떤 모습일까.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안신로 516에 위치한 ‘마리아의 울림들’을 찾았다.

수녀님? 자매님?!

한적한 시골길. 멀리서도 ‘아, 저곳인가보다’하고 짐작되는 집이 있었다. 정성껏 가꿨을 듯한 꽃들이 집 주변으로 만개해 있었고, 마당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성모상이 도로에서도 보였다.

“어서오세요.”

돌멩이 하나도 허투루 놓인 것 같지 않은 아담한 마당으로 들어서니, 환대가 이어졌다. 하늘색의 정갈한 원피스와 모자를 맞춰 입은 여성들이 인사를 건네왔다.

‘수녀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자매님이라고 해야 하나?’

똑같은 옷을 입은 모습을 마주하니 호칭이 고민됐다. 평신도 여성 공동체임을 알고 찾아왔지만, 영락없는(?) 수도복을 마주하니 ‘자매님’보단 ‘수녀님’이라고 불러야 어울릴 것 같았다. 그녀들은 서로를 ‘자매님’으로 불렀다. ‘언니’라는 호칭을 쓰기도 했지만 서로를 부르는 호칭 대부분은 ‘자매님’이었다.

그들의 보금자리는 겉으로 보기엔 여느 시골 가정집처럼 보였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설수록 가정집과는 사뭇 다른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복도 양쪽으로 나눠져 있는 여러 개의 개인 공간과 다수가 함께 이용 가능한 칸막이 화장실, 집의 가장 안쪽에 마련된 경당까지…. 집 안으로 들어갈수록 수녀원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수녀님처럼 보이는 자매님들은, 이곳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시는 걸까.

공동체가 시작될 당시 구심점 역할을 했던 김택자(헬레나)씨는 “정해진 일과표대로 살아간다”고 간단히 설명했다.

“처음 회칙을 만들 때 베네딕도 수도회의 회칙을 참고했어요. 그래서 ‘일과 기도’,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하루 일과가 구성돼 있습니다.”

오전 5시20분에 기상해 성체조배와 성무일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각자의 일터에서 소임을 다한 뒤 오후 5시30분에 성무일도와 저녁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상이었다. 회칙에 따라 기도·서원·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 수도회의 일상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공동체 본원 옆 텃밭에서 고추 모종을 옮기고 있는 ‘마리아의 울림들’ 자매들.

시작은 미약했지만…

1992년, 한센인들을 돌보던 ‘다미안피부과’(현 ‘다미안의원’)에서 공동체의 싹이 텄다. 프랑스의 ‘성도미니코 관상수녀원’에서 수도생활을 하던 김택자씨의 귀국이 계기가 됐다. 20여 년을 그곳에서 보낸 김씨는 평생 수도생활을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김씨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온몸에 솟아오르는 원인불명의 붉은 반점은 지독한 통증을 가져왔다. 수년간 애써봤지만 모두 허사였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졌을 무렵, 휴가가 주어졌다. 2년. 모국에 가서 병을 치료해 보라는 것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인연이 닿은 곳이 ‘마리스타 교육 수사회’였다. 당시 마리스타 교육 수사회가 한센인들을 위해 운영하고 있던 경북 영주 다미안피부과에 김씨는 거처를 마련했다. 처음에는 스스로의 몸도 건사하기 힘든 상태였지만, 6개월여가 지나면서 거짓말처럼 건강이 회복됐다. 그리고 수사들을 도와 한센인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프랑스로 돌아가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지만,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외면하고 떠나기가 어려웠다. 김씨가 ‘정착’을 택한 그 무렵, 누군가가 보내기라도 한 것처럼 ‘봉사하는 삶’을 꿈꾸는 여성 신자들이 다미안피부과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김씨를 포함해 5명이 모였다.

매일 봉사하고 기도하는 자매들의 공동체는 당시 안동교구장 고(故) 박석희(이냐시오) 주교에게 알려졌고, 박 주교는 1992년 공동체를 직접 축복하며 힘을 보탰다. ‘마리아의 울림들’이라는 공동체 이름 역시 이 무렵 자매들이 머리를 맞대 만들었다.

김씨는 당시를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지만 ‘성모 영성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게 하는 공동체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들이 확고했다”고 회상했다

울림은 세상으로 퍼져나가

처음엔 피부과 3층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의성군 안계면에 자리를 잡고, 돌봐줄 이 없는 할머니 두 분을 모시고 지냈다. 함께 살 공간을 마련하고,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비하는 과정 등에도 여러 은인들의 도움이 이어졌다.

치매를 앓던 할머니는 김씨를 “엄마”라 부르며 따랐다. 필요로 하는 것을 챙기고 생활을 도왔을 뿐이었지만 할머니에게 김씨는 의지할 수 있는 ‘엄마’였다.

“할머니들을 그저 섬겼어요. 저희 공동체로 오신 예수님이라 생각하고, 편안히 여생을 보내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죠.”

자매들의 진심이 통한 것일까. 교회를 넘어 지역사회에서도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30여 년이 지난 현재, 이 공동체는 17명의 여성 노인들을 돌보는 사회복지법인 ‘한알’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서 일하는 공동체 자매는 3명. 나머지 일손은 지역민을 채용해, 지역사회 발전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차상위계층 노인 요양시설 ‘두레 할머니 집’과 안동교구 납골당 ‘봉안경당’ 또한 자매들의 일터다. 총 세 곳에서 사도직 활동을 펼치는 11명의 여성 공동체.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 안동교구와 마리아의 울림들의 ‘특별한’ 관계는 큰 역할을 했다.

교구 사무처장으로 마리아의 울림들 지도를 맡고 있는 안상기 신부는 “공동체로 모인 사람들에게 현재 생활의 영적 의미를 깨닫도록 이끌고, 신앙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보살피는 것이 교구의 역할”이라면서 “30년째 한결같은 모습으로 공동체를 이어오고 있는 이들이 더 적극적으로 교회적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구는 1993년부터 마리아의 울림들을 위해 지도 사제를 지정해 왔고, 교구 사제들을 파견해 주 1회 신앙교육·월 1회 고해성사를 시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왔다. 2003년 안동교구장 권혁주(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가 공동체 회칙을 인준했으며, 새 보금자리(예천군 지보면 암천리) 공사에도 교구는 큰 도움을 주고 있다.

30주년을 맞은 현재, ‘마리아의 울림들’은 교구와 함께 정식 수도회 인준을 준비 중이다. 안동교구 소속 ‘첫’ 수도회. 인준까지는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성소자도 없고, 새 보금자리 공사비용 역시 턱없이 부족하다. 안 신부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령의 농민들이 대다수인 안동교구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농촌 선교’에 특화된 수도회의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높다.

안 신부는 “교구 곳곳에 있는 공소들을 돌보고, 혼자 살고 계시는 어르신의 안부까지 챙기는 수녀회의 모습을 그려보고 있다”고 전했다.

되새겨본다

강정자(바르나바)씨는 2017년 마리아의 울림들에 입회했다. 대형 수녀회 소속으로 20여 년을 살아왔지만, ‘방향’에 대한 고민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주님을 향해 가겠다는 삶의 큰 방향에는 전혀 의심이 없었어요. 그런데도 자꾸 의문이 들더라고요. 세상으로 더 다가갈 수는 없을까, 세상 안에서 다른 모습으로 주님을 따를 수는 없을까…. 자꾸 의문이 드니 답을 찾고 싶었죠.”

강씨가 수녀회에서 보낸 20여 년이 사회에서 배우고 익힌 것을 내려놓는 과정이었다면, 마리아의 울림들에서의 생활은 수녀회에서 익힌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는 시간이었다. 기존 삶에서 익숙해진 것들을 내려놓는 과정, 변화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시간. 이 모두를 강씨는 한 발 한 발 걸어가고 있다. ‘소명’에 대한 고민과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 강씨는 매일 그 과정을 거치며 주님을 향해 다가간다.

2016년 마리아의 울림들에 입회한 이은미(마리안나)씨는 간호사였다. 오십이 넘는 나이까지 그야말로 ‘열심히’ 생활했다.

“민간봉사단체에 가입해 꾸준히 활동하고, 모든 일정을 성당 활동에 맞춰 생활할 만큼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어요. 하지만 갈망 같은 게 사라지질 않더라고요. 더 헌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수도회 입회도 불가능한 나이에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를 오래 고민했어요.”

‘마리아의 울림들’이라는 여성 공동체가 있고 나이와 무관하게 입회할 수 있다는 정보까지 접했지만, 기존의 삶을 정리하는 것도 두렵긴 마찬가지였다. 서울에서 경북 의성까지 공동체를 직접 찾아오기를 수차례. 그렇게 3년 여를 더 망설이다 결국 입회를 결심했다. 공동체 생활 6년 차. 그녀에게 성모 성월을 보내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묻자, 성경 한 구절을 추천해 주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

“세상을 살다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잖아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도 벌어지고…. 성모님께서도 그런 기분을 느끼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 성모님은 눈앞에 벌어진 일들을 바라보고 놀라거나 당황하기보다 일단 ‘침묵’ 속에 ‘곰곰이 되새기는’ 시간을 가진 것 같아요. 그리고는, 모두 받아들이셨죠.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일단 받아들이는 것, 침묵 속에 그 의미를 되새기는 태도가 살면서 참 필요한 것 같아요.”

공동체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이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의 자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을 향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끝없이 고민하고, 현재의 모습이 하느님 영광을 향한 것인지를 꾸준히 성찰하는 이들을 보며 내 삶 역시 돌아보게 됐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하루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침묵과 순명. 우리의 삶 안에는 이 두 단어가 얼마나 스며들어 있을까.

※성소 및 후원 문의 010-2503-9091 ‘마리아의 울림들’ 김택자(헬레나)

‘마리아의 울림들’ 자매들이 4월 27일 공동체 본원 마당 성모상 앞에 모여 기도하고 있다.

올 9월 완공될 ‘마리아의 울림들’ 보금자리.

이나영 기자 lala@catimes.kr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