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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 (9)과학과 신앙 간의 부적절한(?) 접목 시도의 예들

김도현 바오로 신부(서강대학교 교수)
입력일 2022-04-26 수정일 2022-04-27 발행일 2022-05-01 제 3292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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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실체의 법칙을 비물질적 실체에 근거 없이 확대 적용
과학에서 발견된 특정 현상을
초자연적으로 해석해선 안 돼

바닷가에서 명상을 하고 있는 사람. 물질적 실체에 적용되는 과학 법칙을 교묘하게 인간의 마음이나 우주 에너지에 연결짓는 식의 주장이 존재한다. 이는 과학과 영성 간의 부적절한 접목으로, 소위 ‘뉴에이지 운동’의 주장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예전의 글을 통해 제가 여러 차례 강조해 드린 바와 같이 ‘과학과 신앙은 둘 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라는 엄마로부터 함께 탄생한 쌍둥이’입니다. 그래서 과학과 신앙은 창조주 하느님을 제대로 이해하고 섬기기 위한 두 도구로서 존재해야 합니다. 각자의 영역만을 고집스럽게 강조하고 다른 영역을 무시하는 것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하느님을 제대로 이해하고 섬긴다는 차원에서 교회에서 강론이나 서적을 통해 과학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과학과 신앙은 대략 200년 전부터 각자 고유한 자신의 영역을 지키면서 다른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방식으로 공존해 오게 되었습니다. 과학은 오감을 통한 관찰이 가능한 물질적 세계를, 신앙은 관찰 불가능한 비물질적 세계를 맡는 식이었죠. 다시 말하면 과학은 물질과 육신을 다루는 반면, 신앙은 영혼과 정신을 다루는 것으로 현재까지 공존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소위 1세계 국가들과는 달리 과학자 집단과 교회 사이에 서로의 영역을 거의 건드리지 않으면서 큰 긴장이 없이 나름 평화로운 공존을 해온 편에 속합니다. 덕분에 신앙을 가진 과학자분들이 우리 주변에 생각 외로 많이 계십니다. 그리고 일선 신부님들 중에 과학의 예를 들면서 강론을 해도 거의 문제 삼는 경우가 없습니다. 하지만 과학을 예로 드는 이러한 강론들이나 신앙 저서들 중에서 다소 오해의 여지가 있는 해석이 들어간 경우들이 간혹 보입니다. 과학과 특히 영성 간의 접목을 시도할 때에는 ‘유비(類比)적 차원’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할 경우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현대에 들어와서 과학과 영성 간의 부적절한(?) 접목으로 인해 많은 폐해가 발생하고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저의 견해를 간략하게나마 말씀드릴까 합니다. 일선 사목을 하시는 분들과 신자분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강론들이나 신앙 저서들 중에는 과학에서 발견된 특정 현상을 통해 초자연적 실체나 초자연적 능력을 강조하는 경우가 종종 보입니다. 이러한 경우 소위 ‘뉴에이지 운동’의 주장이 섞여 들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교회의 강론이나 저서에서 예상외로 자주 인용되고 있는 단적인 예가 바로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던 책인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모토 마사루, 2002년)입니다. 이 책은 소위 세기말의 뉴에이지 운동의 대표적인 개념인 우주적 기운, 우주 에너지, 정신 에너지 등을 아름다운 물 결정 사진과 ‘사랑과 감사’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과학자들로부터 다양한 반복 실험을 통한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저자만의 실험 사진과 주장만을 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 과학적 내용이 아니라 유사과학적 내용을 담은 책으로 분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좋은 말을 써놓은 통과 나쁜 말을 써놓은 통에서 언 얼음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좋은 말을 써놓은 통은 얼음 결정이 예뻤고, 나쁜 말을 써놓은 통에서 언 얼음은 결정이 못생겼다. 왜냐하면 물은 46억 년간 지구상에 있었기에 뭐가 좋고 뭐가 나쁜지를 안다. 좋은 말을 하고, 나쁜 말을 줄이면서 물을 통해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자. 우리의 몸도 70%가 물이기에 물과 마찬가지로 좋은 말을 할수록 몸에 좋다.”

물질의 상태와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들, 특히 저를 포함한 물리학자들이 에너지라는 개념을 즐겨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에너지 개념에는 좋고 나쁨, 아름답고 추함, 사랑과 미움 등 감정이나 윤리와 관련된 가치까지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자연과학의 관점에서는 물에게 화를 낸다고 해서 물 결정이 추하게 변한다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 책은 과학적(?)으로 보이는 언어와 개념이 제법 쓰이고는 있지만, 사실은 ‘건강 이슈와 영육일원론’이 적절히 결합된 뉴에이지 계열의 서적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만큼 과학 개념 사용에 있어서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성공과 자기계발을 위해 우주적 기운과 인간의 간절함의 중요성을 강조할 목적으로 끌어당김의 법칙(law of attraction)이라는 과학적인(?) 개념을 사용한 「더 시크릿」(론다 번, 2007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 역시 출판 직후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국내에서도 교회의 강론이나 저서에 직간접적으로 활용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생각과 감정은 긍정도 부정도 실체화하는 원동력이 된다. 강한 생각은 비슷한 기운을 끌어당긴다. 그러니 네가 이루고 싶은 것을 생각해라. 계속 생각해라. 그럼 우주의 에너지가 그것을 이루어줄 것이다.”

이 책 출판 이후 전 세계의 많은 독자들이 이 책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언급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자기계발서로 분류되는 이 책이 다른 자기계발서와 비교해서 훨씬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유는 바로 물리학의 용어와 개념이 등장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 책의 출판과 함께 공개된 「더 시크릿」 비디오의 경우 양자물리학자 한 명이 등장해서 물리학적인(?) 용어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이 책의 내용이 전 우주적인 원리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이라 할 수 있는 뉴턴의 중력 법칙(우리나라에서 흔히 ‘만유인력의 법칙’이라고 불리고 있죠)은 인력 법칙(law of attraction)의 한 예에 속합니다. 하지만 그 중력 법칙은 어디까지나 질량을 가진 두 물체들 간의 끌어당김을 설명하는 법칙일 뿐, 비물질적 실체인 인간의 마음에까지 적용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 책은 물질적 실체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인력 법칙을 교묘하게 비물질적 실체에까지 ‘구체적인 근거 없이 확대 적용’ 시키는 방식을 활용해서, 우주 에너지와 인간의 마음을 물리학의 인력 법칙을 통해 연결짓는 식의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물리학의 인력 법칙, 자기계발서의 공통 주제인 긍정의 힘 강조, 기복 신앙적 태도 등이 적절히 결합된 뉴에이지 서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도현 바오로 신부(서강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