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 (7)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입력일 2022-03-30 수정일 2022-03-30 발행일 2022-04-03 제 3288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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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피 스며든 땅에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순교자 100명 이상 목숨 잃은 곳
2019년 문화 복합 공간으로 성역화
지상엔 공원·지하엔 역사박물관 갖춰

서소문역사공원. 활짝 핀 꽃송이 너머로 순교자현양탑이 보인다.

생명의 봄이 우리 곁으로 찾아와 새로운 노래를 부른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대지에서 새싹이 돋는 것을 보면 생명보다 더 강인하고 소중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새봄을 맞이한 것이 그저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 자연에는 이처럼 생명이 가득한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여전히 한겨울처럼 보인다. 세계 각국의 많은 사람이 코로나19 확산으로 고통 받으며 힘든 나날을 살고 있다. 또한 지난달에 러시아 침공으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피난민으로 주변 국가를 떠돌며 고통 중에 있다. 자연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봄날의 풍경이 인간 세상에도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지금 서울역 근처의 서소문역사공원에는 매화와 산수유 등 이른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겨우내 두꺼운 옷을 입었던 사람들도 가벼운 차림으로 공원을 거닐며 봄기운을 만끽한다. 그러나 이 공원은 다른 곳과 달리 깊은 고통의 역사를 품고 있다.

서소문역사공원이 있는 서소문 밖 네거리는 당고개, 새남터, 절두산과 더불어 조선 시대 공식 참형장이었다. 특히 1801년 신유박해 이래 이곳에서 순교한 이들 가운데 신원 확인자만 해도 100명이 넘는다. 그들 중 44위가 1984년 한국103위 시성식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또한 2014년에 시복된 순교 복자 124위 가운데 27위가 서소문에서 순교하였다.

서울대교구는 이처럼 뜻 깊은 서소문성지의 성역화를 제안했고 서울특별시가 받아들여 2019년 6월, 지상에 공원을 조성하고 지하에 문화 복합 공간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개관하였다. 현재 서울대교구가 서소문성지와 역사박물관을 관리, 운영하고 있다.

지상 공원에는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정원과 산책로가 있으며 한쪽에는 순교자 현양탑(조광호 신부 작)이 우뚝 서 있다. 이 탑은 커다란 목칼 세 개로 꾸며졌으며 중앙에는 고통을 겪는 순교자 부조가 있다. 양쪽 목칼에는 서소문에서 순교한 성인(44위)과 복자(27위), 순교자(20위)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입구.

서소문역사공원 지하 3개 층에는 신앙과 문화의 복합 공간인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 자리한다. 지하1층에는 도서관과 명례방(강당), 지하 2층에는 기획 전시실과 성 정하상 바오로 기념경당, 지하 3층에는 콘솔레이션홀과 하늘광장, 상설전시관이 있다.

박물관 입구의 마당에는 순교자들이 썼던 칼을 형상화 하여 만든 ‘순교자의 칼’(이경순 작)이, 출입문 옆에는 온갖 고통을 당하며 살았던 사람들을 형상화한 ‘수난자의 머리’(최의순 작)가 있다. 이 두 작품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 담고 있는 수난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지하 2층에는 기획전시실과 서소문에서 순교한 성인의 이름을 딴 성 정하상 바오로 기념경당이 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교회 미술품 뿐 아니라 타종교의 예술품이나 현대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 작품을 소개한다. 기념경당에서는 서소문성지로 순례를 오거나 박물관을 방문한 신자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한다.

지하 3층에는 콘솔레이션홀과 하늘광장, 상설전시관이 있다. 위로의 방을 뜻하는 콘솔레이션홀에서는 사람들이 사방에 비치는 영상과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명상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 내부를 조금 어둡게 만들어 사람들이 내면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는데 고구려 무용총의 내부 구조에서 영감 받은 것이라 한다. 콘솔레이션홀 제단 아래에는 서소문에서 순교한 다섯 성인(이영희 막달레나, 이정희 바르바라, 허계임 막달레나, 남종삼 요한 세례자, 최형 베드로)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콘솔레이션홀 앞에 넓은 하늘광장이 있다. 이 광장 사방은 붉은 벽돌로 쌓여있지만 하늘 부분만은 뚫려 있어서 밝게 보인다. 하늘광장에는 철도 침목으로 제작한 ‘서있는 사람들’(정현 작)이 있다.

하늘광장 모습.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의 상설전시관은 두 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제1전시실에는 조선시대 후기 사상사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도록 고서를 펼쳐놓았다. 「천주실의」(마태오 리치 저), 「목민심서」(정약용 저) 등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전시장의 가장 안쪽에는 안중근 의사(토마스, 1879~1910)가 쓴 유묵(遺墨) ‘敬天’(경천)이 전시되어 있다. “하느님을 공경하라”는 뜻의 이 유묵은 안 의사가 1910년 사형을 앞두고 중국 뤼순 감옥에서 쓴 것이다.

제2전시실에는 서소문 밖 네거리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물이 있다. 원래 이곳은 농업, 수산업, 수공업이 발달했던 장소였다. 한강 물길을 통해 반입되는 모든 물자가 서소문 밖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에 인파로 붐볐다고 한다,

지하의 역사박물관을 둘러보고 다시 지상의 공원으로 올라오면 이 땅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국천주교회가 수많은 순교자들의 희생 위에 우뚝 서 있음을 저절로 알게 된다. 교황청은 2018년 9월 14일 이곳 성지를 포함한 ‘천주교 서울 순례길’을 교황청 국제순례지로 선포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뿐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신앙선조들의 강인한 신앙과 삶을 본받도록 하기 위함이다.

서소문역사공원에 핀 흐드러진 꽃은 박해 때에 희생된 많은 순교자들이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해마다 꽃으로 부활한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들의 거룩한 땅을 거닐며 지금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삶을 가꾸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 관람 안내

주소: 서울 중구 칠패로 5

개관: 화~일 09:30~17:30(월 휴관), 수 야간 개장 17:30~20:30(3~11월)

정하상 바오로 기념경당 미사: 오전 11시, 오후 3시(월요일 제외)

문의: 02-3147-2401

주변 순례지: 중림동약현성당(1892년 건립, 사적 제252호). 서소문성지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벽돌조 성당. 중림동약현성당은 서소문성지의 기념성당으로 성당 구내에는 서소문순교성지전시관이 있다.

상설전시관 내부.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