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소아 뇌종양 환자 이야기 / 고영초

고영초 가시미로 건국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입력일 2022-03-29 수정일 2022-03-29 발행일 2022-04-03 제 328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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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85년 5월 한림대학교 부속 강남성심병원에서 신경외과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전공의 시절부터 미세 뇌수술, 특히 뇌종양 환자 수술에 관심을 가졌기에 뇌종양 환자를 많이 수술했다. 소아에서는 백혈병 다음으로 흔한 종양이 뇌종양인데, 당시엔 소아 뇌종양 전문 병원들이 없어 나는 적지 않은 소아 뇌종양 환자들을 수술했다.

1988년 조교수 시절, 병원 직원 조카인 7세 뇌종양 환자 ‘혜미’를 수술했다. 시상 하부라는 뇌의 중심부에 생긴 종양으로 경계가 비교적 분명한 종양이었는데, 수두증을 동반하고 있었다. 수술 해부학 지식을 총동원해 뇌실에 카테터를 넣어 뇌척수액을 빼면서 뇌압을 낮춰 시신경 후방에서 발생한 종양을 제거했다.

요즘처럼 수술 중 위치 추적 장치를 이용할 수 없어 확실한 종양 부분만 제거했다. 수술 후 뇌 영상에서 종양은 완전히 제거된 것으로 판단되어 방사선 치료를 생략했다. 매년 뇌 영상을 찍으면서 경과를 관찰하던 중 5년 만에 두통이 심해지면서 종양이 재발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처음 수술과는 다른 경로로 종양을 완전히 제거하고, 국소 방사선 치료를 추가했다.

혜미는 뇌하수체 기능 저하에 대한 약물 치료를 받으면서 처음 수술한 지 22년 만에 결혼했다. 결혼한 지 8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는 것 외엔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수확한 감귤을 해마다 보내오고 있고, 재수술한 지 25년이 지난 2018년 시행한 뇌 영상에서도 종양 재발은 없었다.

7세 남아 ‘경식’이는 수모세포종이란 악성 뇌종양으로 1995년에 소뇌종양 제거술을 받았다. 수술 후 회진 때마다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하던 참으로 똑똑한 아이였다. 항암 치료를 위해 다른 병원으로 옮겨 뇌 전체와 척수 방사선 치료를 받고, 수차례 항암 치료를 받았다. 이후 소식이 없다가 2007년 병사용 진단서를 발급받기 위해 나를 찾아왔다.

성장 호르몬 치료를 포함해 뇌하수체 기능 부전에 대한 약물 치료도 잘 받았다고 했는데, 키 134cm, 몸무게 37kg에 불과했다. 뇌와 척추 MRI 검사에서 종양 재발은 없었으나, 심각한 신체 성장 장애를 보인 것이었다. 성장 장애뿐 아니라 IQ가 70 이하로, 뚜렷한 인지 장애까지 동반되었다. 병무용 진단서에 군사 훈련이 불가하다고 써줬다.

이후 오랫동안 소식이 없다가 수술한 지 25년이 되던 2020년 6월에 간질 발작을 하면서 넘어져 심한 뇌손상을 입고 입원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수술 없이 의식을 회복하긴 했으나, 뇌손상 후유증으로 간질 중첩증이 합병됐다. 이후 여러 항경련제를 바꿔 가면서 치료해 간질 발생 빈도나 정도는 다소 호전되었으나, 치매에 가까운 인지 장애와 하루에도 수차례 재발하는 간질로 처음 수술한 지 27년 만에 사망했다.

소아 뇌종양의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는 성인 뇌종양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 위의 두 예를 통해서도 분명하다. 최근 소아 신경외과 의사들과 항암 치료 전문 소아과 의사들의 노력으로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 부작용은 현저히 개선됐다. 경식이도 최근 개발된 부작용이 덜한 맞춤 치료를 받았더라면 성장 장애나 인지 장애가 훨씬 덜한 상태로 살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고영초 가시미로 건국대병원 신경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