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제4대 청주교구장 김종강 주교 임명] 삶과 신앙

민경화 mkh@catimes.kr, 이재훈 기자
입력일 2022-03-23 수정일 2022-03-23 발행일 2022-03-27 제 3287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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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이웃 사랑하라는 가르침 평생 실천해 온 사제
증조부 때부터 신앙 이어온 가족
공소에서 기도하고 놀며 자라나
장봉훈 주교가 이끌어 사제의 길로
친구이자 형처럼 편안하게 신자 대해

1996년 6월 28일 거행된 사제서품식에서 김종강 주교와 큰형 김은용씨 부부의 모습. 김종강 주교 제공

30여 년 전, 기타를 잘치고 운동도 잘해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본당 주일학교 교사에게 하느님과 함께 가는 길을 알려준 주임신부.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이 많았던 앳된 청년은 하느님이 주신 큰 사랑을 나누는 방법을 주임신부에게 배웠다. 그렇게 시작된 성소를 향한 꿈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값진 열매를 맺었다.

본당 주임신부였던 사제는 주교가 되어 오래 전 하느님의 품으로 인도했던 한 청년의 손을 다시 잡았다. 제4대 청주교구장으로 임명된 김종강(시몬) 주교와 전임 교구장 장봉훈(가브리엘) 주교가 30여 년 만에 다시 맞잡은 두 손. 그 안에 담긴 은총은 청주교구를 희망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사랑 많은 집안의 막내로 태어난 김종강 주교

청주시 오창읍 가곡공소. 시골마을에 세워진 작은 공소에서 김종강 주교의 신앙 씨앗이 싹텄다. 김 주교의 큰형 김은용(요한)씨는 증조부 때부터 신앙을 이어온 집안을 “공부는 하루 못해도 기도는 절대 빼놓으면 안 되는 분위기였다”고 회고했다.

김종강 주교의 어린시절. 앞줄 왼쪽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아기가 김종강 주교다.

큰아버지가 공소회장인 덕분에 주일뿐 아니라 평일에도 공소에서 기도하고 앞마당에서 놀기도 했던 김 주교와 형제들에게 신앙은 삶의 전부와 같았다. 또한 매일 저녁기도와 묵주기도를 함께했던 6남매에게 기도하는 시간은 하느님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김 주교의 아버지는 자상하고 사랑이 많았다. 변변한 장난감이 없는 시골생활이었지만 손재주가 좋았던 김 주교의 아버지는 윷이며 낚싯대며 각종 장난감을 뚝딱 만들어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사랑이 많았던 가정의 분위기는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주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애주애인’(愛主愛人)을 강조했던 아버지의 가르침은 김 주교의 인생을 이끄는 나침반이 됐다.

셋째 형 김종상(토마스)씨는 “동생은 노래도 잘 부르고 기타를 잘 치는 것은 물론이고 운동도 잘해서 항상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며 “사람들과 함께일 때, 그리고 그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을 행복이라 생각했던 아이였다”고 말했다.

훗날 김 주교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아버지의 가르침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그는 사제로 첫 발을 내딛으며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2)라는 말씀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

겸손한 자세로 사람들과 함께 걷다

‘동행’. 지인들이 기억하는 김 주교는 늘 누군가와 함께였다. 본당 주임 시절에는 주민들을 모아 기타를 가르치고, 청년들과 농구와 족구를 하는 일도 많았다. 대전가톨릭대 교수 시절에는 신학생들과 같이 기도하고 운동을 하는 게 일과였고, 로마 성바오로 국제선교신학원에 있을 당시엔 특유의 친화력 덕분에 투표를 통해 두 번이나 부원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신학교 3학년 때의 김종강 주교.

본당 주임신부이자 스승인 김 주교를 어려워하는 이들도 있을 텐데 그와 함께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때론 형 같고, 때론 아버지 같이 편안한 분이셨다”고 입을 모았다. 사람들이 김 주교를 격의 없이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겸손’에서 비롯됐다.

대전가톨릭대에서 김 주교의 강의를 들었던 청주교구 청소년사목국 차장 권환준(시몬) 신부는 “고민이 있다고 하면 언제든 들어주신 아버지같은 분이자, 함께 축구를 하고 테니스를 치며 친구같이 저희와 함께해 주신 분이셨다”고 말했다.

신학교 동기인 청주교구 복음화연구소장 정용진(요셉) 신부는 “김 주교님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거나 내세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서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동행하려고 노력하는, 겸손함이 배어 있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김 주교는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리지 않게, 사람들과 걸음을 맞추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신앙서적뿐만 아니라 소설과 시 등 독서를 즐겼던 김 주교의 모습을 기억하며 정 신부는 “책을 통해 폭넓게 세상과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렇게 얻은 것들을 사목현장에서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범한 우리 삶과 함께했다. 그 안에서 고통과 기쁨을 나누며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김 주교에게 사제의 길도 그러했다. “지난 26년간 기도하고 사람들과 소소한 행복을 나누며 평범한 일상을 살았던 것이 기쁨”이라고 말하는 김 주교. 평범한 삶에 담긴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그이기에 교구민들과 함께할 하루하루를 성실하고 기쁘게 꾸려나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1996년 6월 30일 김종강 주교가 사제서품 후 첫 미사를 주례하고 있다 .

교구 청소년사목국장 재임 시절 김종강 주교가 예비고등학생 피정에서 미사를 주례하고 있다. 청주교구 제공

■ 약력

1965년 1월 2일 충북 청주 출생

1987-1996년 대구가톨릭대학교(대신학교)

1996년 6월 28일 사제 수품

1996년 6월 28일–1997년 6월 29일 청주교구 서운동본당 보좌신부

1997년 6월 30일–1999년 1월 24일 청주교구 흥덕본당 보좌신부

1999년 1월 25일–2001년 1월 28일 청주교구 학산본당 주임신부

2001년 1월–2006년 6월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 교회사 전공

2005년 1월 25일–2010년 8월 16일 교황청립 성바오로 국제선교신학원 부원장

2010년 8월 17일–2013년 8월 15일 청주교구 청소년사목국장

2013년 8월 16일–2015년 8월 12일 청주교구 계명본당 주임신부

2015년 8월 13일–2020년 8월 30일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2020년 8월 31일–현재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관리국장

2022년 3월 19일 청주교구장 임명

민경화 mkh@catimes.kr, 이재훈 기자 steelheart@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