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돌아온 아들처럼 / 이미영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2-03-22 수정일 2022-03-22 발행일 2022-03-27 제 3287호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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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집단 실종 사건.” 한창 꽃들이 피어나고 벌과 나비가 날아다녀야 할 봄날, 추리소설 제목 같은 섬찟한 뉴스를 들었습니다. 전국 양봉 농가 곳곳에서 겨울잠을 자고 다시 움직여야 할 꿀벌이 보이지 않고 벌통이 텅 비어 있어 그 피해 실태를 확인해 보니, 약 77억 마리 이상이 지난겨울 동안 사라졌다고 합니다.

정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어 그야말로 추리소설 속 탐정처럼 여러 정황이나 증거로 그 범인을 찾는 중인데, 해충이나 살충제 영향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기후변화가 꿀벌 실종의 가장 큰 원인일 거라고 전문가들은 추측합니다. 개화 시기가 빨라지고 봄과 가을의 이상저온 현상, 따스해진 겨울 등이 꿀벌의 생장에 영향을 끼쳐 제대로 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꿀벌의 집단 실종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2006년 미국에서 처음 이런 현상이 보고된 이후, 2010년대에 들어 세계 여러 지역에서 꿀벌의 30~40%가 사라진 것으로 나타납니다. 멸종 위기가 낮다고 보았던 꿀벌마저 이렇게 갑자기 사라지고 있고, 머지않아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옵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생산량의 약 71%의 꽃가루받이 작업을 꿀벌이 담당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심각한 식량난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온갖 기술력으로 대책을 세워 인공 꽃가루받이 작업을 한다 해도, 인간의 힘으로는 꿀벌이 자연스레 우리에게 주던 선물을 대체하기 힘듭니다.

꿀벌의 사라짐은 인간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 당장 우리에게 닥칠 손해를 계산하며 그 위기감이 더 크게 다가오지만, 야생의 수많은 생명체가 인간의 산업혁명 이후 급속히 멸종하고 지금도 계속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아니, 가끔 뉴스를 통해 전해지더라도 인간 아닌 다른 생명체의 죽음, 하나의 종이 완전히 사라지는 ‘멸종’이라는 말의 무게감을 우리는 잘 실감하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 손수 만드시고 “보시니 참 좋았다”라고 감탄하며 기뻐하셨던 창조의 아름다움을, 우리 인간은 편리함과 돈으로 맞바꾸며 파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음에 이르셨던 것처럼, 죄 없는 뭇 생명이 인간의 죄 때문에 지금 예수님처럼 고통을 당하며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정말로 우리 인류가 회심 수준의 대전환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하나둘씩 사라지는 생명체의 목록에 머지않아 인간도 오르게 될 것만 같습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로 방사능이 유출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피해를 줄이고자 방사능 인공구름을 만들면서 방사능 비를 맞은 느릅나무 숲이 떼죽음을 당한 일이 있습니다. 불교학자 조안나 메이시는 체르노빌에서 핵사고 피해자들의 치유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죽어간 느릅나무를 애도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느릅나무 춤(엘름댄스)’을 추었습니다.

작년 우리나라에서도 후쿠시마 원전사고 10년을 기억하며 한국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정의평화창조보전(JPIC) 수녀님들이 생명과 평화를 기원하는 느릅나무 춤 동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생태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우리의 회심을 촉구하는 기도의 춤이었습니다. 이번 사순시기 동안 특별히 생태 단식을 실천해보자 했으면서도 몸에 밴 습관이 쉽게 바뀌지 않을 때마다, 수녀님들의 느릅나무 춤 동영상을 보며 죽어가는 뭇 생명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다시금 결심을 다져보곤 합니다.

팬데믹 초기, 감염병이 확산하게 된 주요 원인으로 환경파괴나 기후 위기를 주목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이런 끔찍한 시련은 계속 끝나지 않고 더 자주 반복될 거라는 것을 깨달았으면서도, 우리는 다시 그 위기감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허랑방탕하게 살던 탕자가 회심하여 자비로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듯, 하느님 창조의 아름다움, 그 자비하신 품으로 돌아가는 회심의 길을 우리 신자들이 먼저 앞장서면 좋겠습니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을 보내는 이 시기가,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회심의 시간이 아닐까 하는 절박함으로 말입니다.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