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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겨울 그리고 다시 봄 / 최영균 시몬 신부

최영균 시몬 신부,제2대리구 호계동본당 주임
입력일 2022-03-16 수정일 2022-03-16 발행일 2022-03-20 제 3286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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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관련해 교회가 어찌 잘못될까봐 노심초사 걱정하는 신자들이 많다. 각종 미디어와 언론에서는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온 교회의 전통과 규범 문화가 바뀔 것이라며, 위기라는 언어의 인플레이션을 넘치게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교회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하느님이 어떤 분인가? 비록 세상이 변해도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담기는 세상의 환경이라는 그릇이 바뀌는 것을 보고 일으키는 착오일 뿐이다.

이는 계절이 바뀌는 것과 같다. 계절의 변화를 「주역」에서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계절의 변화가 단순히 눈으로 보이는 자연의 변화만이 아니라 하늘의 4가지 덕과 자연의 원리적인 변화를 의미한다는 말이다.

글자를 하나씩 뜯어보면, ‘원’(元)은 만물이 시작되는 봄을 의미하는 말로 ‘인’(仁)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형’(亨)은 만물이 성장하는 여름으로 ‘의’(義)를, ‘이’(利)는 만물이 결실을 이루는 가을로서 ‘예’(禮), ‘정’(貞)은 만물이 완성되는 겨울로서 ‘지’(智)를 의미하기도 한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동아시아에서 하늘의 품성을 닮기 위해 인간에게 꼭 필요한 덕목으로 통한다. 네 가지 중 한두 가지만 누락되어도 그것은 진짜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선하다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만을 추구하고, 그것이 바로 하느님이요 하느님의 세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하느님은 내가 원하지 않는 때에,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도 오신다.

루카복음 15장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 모습은 하느님과 그분이 만드신 세상의 환경에 대한 우리의 편협함을 꼬집는다. 성경에서 아버지는 공의롭고 성실한 가장이다. 그러나 작은 아들이 일탈하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인다. 공의롭지 못한 작은 아들에게 의로운 아버지는 자비와 용서로 대한다. 이 모습은 의롭고 성실하게 살아온 큰 형 입장에서는 일관성 없고 변덕스럽게 보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의로운 아버지가 원칙을 깨고 불의한 작은 아들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하느님은 우리 인생에 늘 행운만을 주시지는 않는다. 변화하는 세상을 만들어주신 하느님이기에, 그러한 세상에서 체험하는 하느님 역시 다채롭다.

예기치 못한 고통과 좌절이 훨씬 많은 세상에서 하느님은 기쁨과 희망으로 경험되기보다 고통과 좌절의 하느님으로 다가올 때도 있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행운과 불운, 기쁨과 고통, 따뜻함과 냉혹함이 끊임없이 변환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 역시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더라고 고백할 수 있지 않을까.

최영균 시몬 신부,제2대리구 호계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