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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좋은 정치’를 위한 신앙인의 선택 / 이미영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2-02-22 수정일 2022-02-23 발행일 2022-02-27 제 3283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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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본격적인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면서, 거리에 후보자 현수막이 내걸리고 선거 유세 차량도 자주 눈에 띕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삼가라는 말도 있지만, 이번 대선은 유난히 유력한 두 후보의 인물 됨됨이와 그 가족의 문제를 두고 누가 더 나쁜 정치인인가를 경쟁하는 모양새라, 지지하는 후보가 다른 이들 사이에서 괜히 말 꺼냈다가는 서로 감정만 상할 수 있어 정치나 선거 이야기를 더 피하게 됩니다.

최근 저는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 관해 수도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주제로 원고를 하나 쓰면서, 남녀 수도자 10명에게 전화와 서면으로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수도자들은 시끄러운 세상사를 뒤로하고 기도하고 봉사하는 삶에 투신하는 분들이니 정치나 선거 이야기는 별로 안 하실 거 같았는데, 수도회마다 조금씩 달라도 대부분 공동체 안에서 식사나 친교 시간에 사회 문제와 관련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요즘 같은 선거철에는 후보자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며 누구를 뽑아야 할지 의견을 주고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전에 봉쇄수도원 수녀님들을 만났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세상과 동떨어져 가장 깊은 곳에서 기도하시는 수녀님들이 국내외 여러 사안에 관심도 많고 소식도 많이 알고 계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절실한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이 봉쇄수도원을 찾아와 직접 이야기를 전하기도 하지만, 수녀님들도 고통받고 신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가 사는 세상을 위해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식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 소식을 찾아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봉쇄수도원은 세상과 단절된 곳이 아니라 불필요한 말은 걸러지고 꼭 필요한 소리가 모이는 곳이고, 침묵과 기도는 그런 세상의 소리를 더 잘 듣게 해준다는 말씀을 들으며, 수도회나 수도자가 세상과 교회 안에서 어떤 존재인지, 또 우리의 신앙이 세상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수도자들의 인터뷰를 하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개인이나 공동체의 정치적 성향이 어떠한지는 저마다 생각이 달랐지만, 대다수 수도자에게 공통으로 나온 말은 ‘복음적 기준’이었습니다. 한 수사님은 우스갯소리로 “수도자는 여당도 야당도 아닌 성당”이라며, 특정 정치세력을 무조건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생명, 인권, 평화 등 복음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수도자도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정치적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평신도들이야말로 그런 복음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신자 정치인으로서, 또 신자 유권자로서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우리 사회에 ‘좋은 정치’를 이루는 데 앞장서면 좋겠다는 제안도 하셨습니다.

선거철만 되면 후보자들이 각 종교의 지도자를 찾아가거나 종교예식에 참여하고, 자신이 그 종교와 어떤 인연이 있는지를 드러내며 신자들의 호감을 얻으려 애씁니다. 표를 얻기 위해 같은 신자니 뽑아달라거나 특정 종교에 혜택을 줄 것처럼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이 그다지 신뢰가 가지도 않지만, 종교단체나 신자들이 그런 이유로 정치적 판단을 하는 이익집단처럼 여겨지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주교회의 산하 7개 전국위원회는 가톨릭 신자 유권자들의 정책 이해와 선거 참여에 도움을 주고자, 한국 가톨릭교회 정책 질의서를 4개 주요 정당 입후보자에게 발송했습니다. 2월 25일에 주교회의에서 그 결과를 발표한다고 하는데, ‘복음적 가치’에 더 가까운 후보가 누구인지 가늠할 수 있는 좋은 판단 기준이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궁핍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지만, 모든 이를 위한 정의와 형제애를 추구하는 사회적 여정의 시작에 다른 이들과 함께 참여할 때에 ‘가장 드넓은 애덕의 분야, 이른바 정치적 애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매우 숭고한 소명이고 사랑의 가장 고결한 형태’인 정치를 새삼 소중히 여기라고 호소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모든 형제들」 180항)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