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끝까지 사랑하셨다 / 함상혁 신부

함상혁 프란치스코 신부 (수원교구 공도본당 주임)
입력일 2022-02-15 수정일 2022-02-15 발행일 2022-02-20 제 328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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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글 제목은 ‘끝까지 사랑하셨다’로 정해보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저의 결심이기도 하고 지금까지의 사목 체험 중 나누고 싶은 것이 있어서 정한 제목입니다.

사제품을 받고 2년간 보좌신부 기간을 마치고 처음으로 주임을 맡았던 본당에서의 기억입니다. 주임신부 임기는 보통 5년이지만 첫 주임을 맡는 본당은 임기가 3년입니다. 3년의 시간이 금방 흘러가 임기가 3-4개월 정도 남은 때였습니다.

새로운 곳으로의 이동을 준비하고 있는데, 마음속에서 계속 한 가지 말씀이 맴돕니다. 요한복음 말씀입니다.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제자들과의 이별을 미리 아셨던 예수님 마음이 이 구절에 녹아있습니다. 곧 헤어질 것이지만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보좌신부를 2년밖에 하지 않고 주임신부가 되었으니 아는 게 뭐가 있었겠습니까?

그래도 다 이해하고 정성껏 도와준 신자들이 고마웠습니다. 사목 경험이 2년밖에 없었는데 얼마나 많은 실수가 있었겠습니까? 그 허물을 다 덮어주고 참아준 신자들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곧 헤어질 것이지만 끝까지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변합니다. 두 번째 본당에서 임기가 끝나갈 때였습니다. 저의 마음속을 맴돌던 성경 구절은… 없었습니다. 웬만한 이별에는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것일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담담해지는 것 같습니다. 처음 본당에서는 신자들이 주일미사에 잘 안 나오면 걱정되기도 하고 잔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미사는 안 나오지만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으니 행복하게 살도록 기도해야겠다”라는 의연한 마음을 가집니다.

사목 회의나 단체 회합에서 본당 발전을 위해서 치열하게 논의하고 다툼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극에 나오는 대사처럼 “음, 그리 하라 하시오” 할 때가 많습니다. 많은 경험이 쌓이다보니 너그러워진 것일까?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있는 착한 목자가 된 것일까? 둘 다 아닙니다. 사랑이 식은 것입니다. 열정이 사라진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는 말씀을 다시 묵상해 봅니다.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말은 어느 시점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죽음 직전까지, 의식이 사라지는 그때까지 사랑하셨다는 표현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씀 너머에 있는 한 가지 의미를 발견합니다. ‘끝까지 사랑하셨다’ 이 말씀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셨다는 뜻이 아닐까요? 왜 열정이 식었을까? 지쳤던 것 같습니다.

내 마음대로 따라오지 않는 신자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본당의 일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골치아플만한 일들은 피하는 요령이 생겼던 것입니다. 열심히 해봤자 고생만 한다는 트라우마(?)가 생긴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힘을 청하며 기도합니다. “야훼를 믿고 바라는 사람은 새 힘이 솟아나리라. 날개 쳐 솟아오르는 독수리처럼 아무리 뛰어도 고단하지 아니하고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아니하리라.”(이사 40,31)

함상혁 프란치스코 신부 (수원교구 공도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