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마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 고계연

고계연 베드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입력일 2022-02-08 수정일 2022-02-08 발행일 2022-02-13 제 3281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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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가톨릭언론인협의회(이하 가언협) 정기총회가 있었다. 55년 역사의 가언협은 그날 다른 두 단체, 즉 시그니스서울과 가톨릭신문출판인협회와 합쳐 가톨릭커뮤니케이션협회로 새롭게 출발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뉴미디어의 출현, 미디어의 융합과 같은 언론 환경의 변화에 발맞춰 변신을 했다. 사실 가톨릭언론인 3단체 통합 논의는 10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

단체든 정당이든 어떤 조직이든 통합에는 진통이 따르게 마련인데 이번에야 매듭을 짓게 됐다. 총회 때에 임기를 마치는 회장 자격으로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모두 한 마디에서 다른 마디로 옮아갑시다.” 그러니까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로 나아가자는 취지다.

인터넷 사전을 뒤적여봤다. 마감은 ‘하던 일을 마물러서 끝냄, 또는 그런 때’다. 비슷한 말로는 마무리, 끝, 데드라인을 들 수 있다. 특히 필자의 직무와도 친숙한 데드라인은 ‘신문 잡지 따위에서 원고를 마감하는 시간’이다. “첫 문장을 쓰기가 참 힘들다. 원고를 넘기기로 한 시간이 다가올수록 이런 곤경에서 도망치고 싶다. 썼다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는 게 숙명이다.”

모든 작가들의 비슷한 고충이다. 다시 마감에 대해 궁리해 본다. 하루 일과를 끝내는 것도, 졸업이나 제대하는 것도, 현세에서의 삶을 마치고 하느님 품으로 떠나는 것도… 사고의 폭을 넓혀 보면 삶의 굵직한 사건들이 모두 마감인 것이다.

“이제 마감 전쟁 그만하려고 합니다.” 올해로 정년을 맞은 필자도 곧잘 이런 말을 한다. “퇴직 후 계획하는 것이 있나요? 인생 후반전은 어떻게 펼칠 건가요?” 후배나 지인들이 건네는 말이 엇비슷하니 대꾸도 거기서 거기다. “이젠 좀 쉬어야지. 재충전하면서 평소 하고 싶었던 것 할 거야.” 나의 새로운 루틴이 되다시피 한 삼락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을까. 읽기, 쓰기, 걷기의 즐거움을 누리고 그것을 통해 활력을 찾고 싶다.

경제신문의 편집자로서 33년 넘게 일했다. 신문 편집에는 15판, 16판, 25판 등 판갈이를 하면서 지면을 업데이트한다. 강판 시간에 맞춰 편집을 해내야 하는 마감 전쟁에다 야근까지… 때때로 시간에 쫓기는 업무 스트레스에 몸서리도 쳤다. 그런데 누구나 삶의 현장은 결이 다르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마감 전쟁이 아닐까. 나는 가정을 이루고 딸을 출가시키고 지금껏 크게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주님께서 도와주셨다. 또한 한 직장에서 처음과 끝을 경험하고 근속한 것에 나 자신이 대견하고 감사한 일이다. 직장 갈아타기를 쉽게 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겐 미련퉁이로 보일 테지만 말이다.

그런데 마감은 말 그대로 끝일까. 아니다. 마감은 새로운 시작이고 또 그래야 한다. 4월부터 정년퇴직 전 6개월간 시간이 생겼다. “인생 후반전에 맥없이 어영부영하진 말자, 무언가 끈을 잡자.” 나의 커리어의 새 동아줄로 찾은 곳이 혜화동 가톨릭교리신학원. 신학교육 과정에 원서를 냈고 3월부터 2년간 다니게 된다. 우선 성경, 교리, 교회사 등 가톨릭 전반에 대해 심도 있게 배우고 싶다.

사실 코로나19 때문에 최소 정원 15명을 못 채우면 어쩌나 걱정 아닌 걱정까지 했다. 그런데 나의 소원을 아시는 주님께서 한방에 해결해 주셨다. 게다가 동도 수학할 벗들을 만날 생각에 설렌다.

성경에도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한결같다. 내가 시작이요, 내가 마감이다.”(공동번역 이사야 48,12) 마감이요 시작이신 주님께 기도하고 의탁하면서 다시 걷는다. 알 수 없는 나의 미래를 향하여… 그러나 조바심 내지 않고 더 느긋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정진해야겠다. “바른길로 이끄시고 제게 힘을 주시는 주님, 저의 마감이 또 다른 시작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

고계연 베드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