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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 김난심

김난심(엘리사벳),제2대리구 신흥동본당
입력일 2022-01-25 수정일 2022-01-25 발행일 2022-01-30 제 328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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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사랑하는 친정어머니를 보내드렸다. 아직 마음이 저린다. 떠나보내기 몇 달 전 어머니와 말다툼이 있었다. 다툼 이후 난 어머니와의 연락을 끊었다. 자식인지라 어머니는 끊임없이 전화하셨는데 받지 않았다. 난 어머니가 야속하기만 했었다. 그때까지는….

어머니를 떠나보내기 4개월 전, 입원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는 소식과 함께.

강의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어서 휴강 날짜를 잡고 보름이 지나서야 어머니 얼굴을 뵐 수 있었다. 좀 야위기는 하셨지만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날 조카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말기 암이었다. 전이가 너무 많이 돼 수술은 엄두도 못 낼뿐더러 항암 치료를 할 수 있는 조건조차 안 된다고 했다. 그렇게 될 때까지 가족 누구도 몰랐다. 어머니는 강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너무 죄송하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해줄 게 없다고, 집에 가셔서 편하게 계시다가 통증을 호소하면 다시 오라”고 했단다. 어머니는 아직 사실을 모르신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며칠 뒤 어머니께서는 다시 입원을 하셔서 일주일 휴강을 하고 어머니 곁을 지켰다. 그때 담당 의사 선생님께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으신 상태고, 입퇴원을 반복할 거라고 했다.

또 “갑작스럽게 이별할 수 있으니 편하게 집에서 계시는 게 좋다”고 퇴원을 권했다. 어머니는 집으로 오는 날 머리를 다듬고 싶다고 하셨다. 뭔가를 예견하셨던 것처럼.

어느 날 새벽녘, 복통을 호소하셔서 응급실로 향했다. 당시는 몰랐다. 집에 돌아오지 못하실 것이란 걸.

응급 치료 후 “집 가까운 병원에 모시라”는 권유에 병원을 옮겼고 그 후 일반 병실과 중환자실을 오가셨다. 그러던 중 위기가 다시 찾아왔다. 심정지로 심폐 소생술을 받으신 후 의사 선생님은 “호스피스 병동으로 입원하셔야 될 것 같다”는 말씀과 함께 “남은 시간이 1~2주 내외”라고 들려주셨다.

‘아직 어머니와 못 해본 게 너무 많은데’ 싶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때부터 어머니를 뵈러 내려가기 전 기도를 했다. “제발 저의 10년을 드릴 테니 어머니와 한 달만 같이 보내게 해달라”고. 여행도 가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러 가고, 좋은 곳 구경도 가고, 정말 한 달이 주어지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어머니는 매번 갈 때마다 손을 꼭 붙들고 놓지 않으셨다. 점점 쇠약해지시고 자식들을 알아볼 수 없을 때도 손은 항상 꼭 잡고 놓지 않으셨다. 그리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신 지 한 달 20일 만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거의 두 달을 우리 곁에서 추억을 쌓고 가신 것이다. 여행도 못 가고 맛있는 것도 못 먹었지만 매일 어머니 손을 꼭 잡고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지금 어머니는 하느님 품에서 편하게 쉬고 계실 것이다.

김난심(엘리사벳),제2대리구 신흥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