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연중 제5주일 -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
입력일 2022-01-25 수정일 2022-01-25 발행일 2022-01-30 제 3280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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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이사 6,1-2ㄱ.3-8/ 제2독서 : 1코린 15,1-11 / 복음 : 루카 5,1-11
예수님 처음 만난 어부 베드로
기적으로 ‘만선의 꿈’ 이뤘지만
욕심 버리고 겸손했던 모습처럼
항상 주님 진리 믿고 살아가길

오늘 복음과 독서 말씀은 모두 주님과 처음 만난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의 고백이 이사야 예언자의 고백과 맞닿아 있고 바오로 사도의 기억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담깁니다.

“큰일 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라는 겁에 질린 이사야의 모습과 예수님의 크신 능력에 놀란 베드로가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라고 청했던 모습이 다르지 않으니까요. 바오로 사도 역시 스스로를 칠삭둥이라고 낮추어 표현하며 오직 크신 주님을 부각시키고 있으니까요.

교우님들의 그날은 어떠셨나요? 저는 우직함 혹은 당당함 또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기 싫어하는 6학년 남자아이의 기질을 발휘했던 것 같습니다. 참으로 어이없게도 성당에 간 첫날에 성체를 영했으니까요. 선생님께 지적을 받았지만, 꽤 오래도록 그 무지를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그 특별한 은혜가 저의 오늘을 있게 했다는 걸 느꼈고 그날 제 영혼에 간직된 것, 하느님의 충만한 은총이 제 삶을 이끌어 주셨음에 마음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날 어부 베드로는 밤새도록 애썼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맥이 빠졌을 겁니다. 배를 해변에 묶고 그물을 정리하고선 늘어지게 한숨 잘 생각이 간절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도리어 일을 ‘만들어’ 시키십니다. 기껏 힘들여서 정박을 시켜 둔 배를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하시니 말입니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귀찮고’ ‘안 들어줘도 상관없는’ 부탁을 했을 때, 선뜻 들어준 것을 보면서 베드로는 참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쩌면 밤을 꼬박 새우고도 빈손으로 귀가를 하려니 마음이 무거워서, 만선을 기대하고 있을 가족들의 실망하는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그물을 씻고 또 씻으며 시간을 끌던 중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암튼 별 사심 없이 그분께 자신의 배를 사용하게 했을 뿐인 그에게 ‘대박’이 터졌습니다.

오매불망 집을 나설 적이면 “그물이 찢어질 만큼”의 고기가 잡히기를 소원했을 그 만선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꿈을 이룬 오늘, 베드로는 기가 팍 죽었습니다. 기뻐서 펄쩍 뛰기는커녕, 주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떠나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마르코 바사이티 ‘제베대오의 아들들을 부르심’.

성경은 꿈같은 ‘대박’ 사건을 숱하게 전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적을 본 많은 사람은 계속 예수님을 찾아다녔으며 늘 곁에서 계셔주시기를 청하고, 떠나시는 예수님을 만류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에 대비하니 베드로의 태도는 더더욱 뜻밖입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이 겸손한 모습이 주님께 무척 미더웠으리라 짐작을 해봅니다. 흠도 많고 탈도 많았던 베드로를 수제자로 뽑아 올리신 주님의 마음을 엿보는 느낌입니다. 오늘의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내일을 꿈꾸며 지금 가진 것으로 선뜻 베풀 줄 아는 너그러움을 가졌던 베드로의 면면이 주님의 수제자, 교회의 반석이 되는 직무를 얻게 된 이유라 살펴집니다.

그분께서 주신 것을 깨닫고 그분께 얻은 모든 것을 헤아리고 그 전부가 그분의 사랑이라는 것을 느끼면 어느 누구나 꿇어 부복하여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은 행복을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오락가락 이랬다저랬다 하고 변덕스럽기까지 하며 영 시원찮은 믿음으로 쫓아다닌 것 같은, 그래서 우리보다 잘난 게 하나도 없어 보이는 베드로 사도의 특별함입니다. 오늘 이 만남의 감격을 잊지 않았기에 또 돌아서고 다시 돌아와서 그분을 향하는 믿음의 사도가 될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우리와 그분과의 첫 만남이 어떠했던지, 무슨 이유였던지 상관없습니다. 와락 가슴에 담겨 오던 그 감격을 잃지 않고 새로운 다짐으로 살아가면 충분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에서 오는 모든 힘을 받아” 더욱 강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신 감격을 내내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만선을 꿈꾸고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허락하기도 하시고 좌절하게도 하십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선하신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믿기에 실망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한층 업그레이드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사실에 감격하여 주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오직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할 수 있습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세상의 성공코스와 믿음의 성공코스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뚜렷이 알려줍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보다 훨씬 귀한 일이 있으며 그것을 선택할 자유를 지녔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지난밤은 허탕이었을지라도, 내일을 준비하는 어부의 마음을 배우라 이릅니다.

지금 손에 쥔 수확에 연연치 말고 내일을 준비하고 그물을 손질하는 희망을 살라고 가르칩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있다는 믿음으로 흔들림 없이 “스승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는 지혜인이 되라고 강권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베드로 사도의 권유에 따라 온 세상이 그분을 향하도록 이끄는 특은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기도합니다.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