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신부님은 낙하산이에요 / 임현택(토마스) 신부

임현택(토마스) 신부
입력일 2021-12-29 수정일 2021-12-29 발행일 2022-01-02 제 3276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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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청년 몇 명과 청년미사 후에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청년들과의 식사 자리에서는 청년들의 근황도 편하게 나눌 수 있고, 또 청년들이 현실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알 수 있어서 사목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되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식사가 주가 되지 않는 선에서요.

그런데 어떤 한 청년이 저에게 장난 섞인 말투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신부님은 낙하산이에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무슨 말이지?”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왜냐하면 ‘낙하산’은 사회적으로 그렇게 좋은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바로 이어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낙하산이니까 하느님 집에 있잖아요. 하느님이 꽂아준 거죠.” 이 말을 들으면서 저는 “맞아, 맞아” 연신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난 12월 3일에 14명의 새 사제가 탄생하는 사제서품식에 다녀오면서, ‘낙하산’이라는 단어가 계속 맴돌았습니다. 작년엔 코로나19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고, 2년 만에 참석하는 사제서품식이 참 반갑더라고요. 오랜만에 보는 교구 신부님들의 얼굴, 그리고 새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하는 수품자들의 입당 행렬을 보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 저 친구들을 또 어떤 모습으로 쓰실까?”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드디어 수품자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세례명을 불렀을 때, “예, 여기 있습니다!”라는 우렁찬 대답에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는구나”하는 느낌을 물씬 받게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하느님께서 뽑아주신 것이고, 하느님께서 꽂아주신 것이지요.

수원가톨릭대학교 갓등중창단이 부른 성가 중 ‘사랑하는 그대에게’라는 성가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그대 나섬은 출가요, 새로 남, 이별, 아픔, 십자가길. 그분의 부름과 그대의 선택인 것. 사랑의 길인 것을.” 이렇게, 부름이 먼저고 그 다음이 응답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런데 신부로 살면서, 사람들 앞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뭔가를 결정 내리고 하다 보면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것임을 잊을 때가 꽤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나의 응답’은, 나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에 적용되기도 합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이런 유혹에 빠질 때 없으신가요? “내가 잘해서 그런 결과가 나온 거야.” “내가 그만큼 노력을 했지.” 하느님이 빠져버릴 때가 종종 있지요. 요즘 세상의 흐름이 모두 다 ‘자기 자신’에게 기준이 맞춰있어서 ‘각자의 노력’에만 치중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인이지 않습니까? 새 사제들이 첫 강복을 할 때 이렇게 외치죠.

“우리의 도움은 주님의 이름에 있으니.”

맞아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 혼자의 힘이 아니라 주님의 도움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임을 다시 한번 기억해봅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낙하산으로 자리할 것입니다!

임현택(토마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