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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르포] ‘그럼에도 다시 희망을!’ 신앙의 힘으로 새해 기다리는 소상인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
입력일 2021-12-28 수정일 2021-12-29 발행일 2022-01-02 제 3276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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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장 꿈꾸며 
신앙 안에서 희망의 끈 붙잡고 있죠”
연말연시에도 한산한 매장
이전대비 매출 절반도 안돼
임대료 낮춰도 감당 어려워
줄줄이 문 닫는 점포 속출 

신자 상인들 함께 기도하며
서로 위로하고 힘 불어넣어
어려움 속에도 베풀고 나눠
이웃에게 새로운 희망 전해

서울 용문시장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김자재씨가 우편 배달부에게 건강 음료를 건네고 있다. 김씨는 가게 월세도 내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상황이지만, 주변 어려운 이들에 대한 봉사와 나눔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하루하루 달라지는 골목풍경을 본 적 있나요? 재택근무, 비대면 수업 등이 늘어나면서 지역 시장을 시작으로 집단 상가가 있는 주요 시장들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일상을 잃어버린 데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사이, 누군가의 삶의 터전은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지금도 그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 중 한곳인 전통시장. 주로 대면 판매를 중심으로 운영해온 시장 소상인들의 한숨이 깊다. 임인년(壬寅年) 새해를 맞아 어려운 시기이지만, 신앙에 기대어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크리스마스의 한숨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이렇게 손님이 없던 적이 없었어요. 이전대비 반토막도 안 돼요. 지난해보다도 더 심한 거 같아요.”

동대문에서 남성복 도매업을 하는 김연희(로사·동대문시장 준본당)씨가 매장을 들어서며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30세에 친정에서 하던 의류 도매일을 이어받아 19년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기자가 매장에 있던 시간은 매장 문을 여는 오후 8시부터 3시간 정도. 이 시간은 평소 같으면 옷을 문의하러 오는 손님이 가장 많을 때지만, 김씨 매장을 포함해 거의 모든 매장이 한산했다.

김씨는 지난해 코로나19로 매장 3개에서 하나로 줄였고 가장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직원도 떠나보냈다. 당시 함께 일하는 직원들 근무를 주 4일로 조정하고 불가피하게 임금도 줄여야 했을 때, 그 직원이 그만둔 것이다. 김씨는 “힘든 결정이었지만 19년간 했던 이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코로나19 이후 손님이 줄기도 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식당 및 카페 운영시간이 오후 9시로 제한되자 손님의 발걸음이 더 뜸해졌다. 특히 지난 12월 1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매장을 찾는 이들이 줄어 김씨를 포함한 상인들의 걱정이 늘었다.

■ IMF 뛰어넘는 얼음지갑

코로나19로 외국인들의 입국이 막히고, 일반 영업 제한이 걸리며 활기찼던 동대문평화시장은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요해졌다. 코로나19 이후 모든 상가에서 20%가량 가게들이 문을 닫았으며, 6개월 이상 대기를 해야만 입점할 수 있을 정도로 치열했던 청평화시장 4~5층 매장들도 지금은 대부분 가게들이 철수했다.

특히 대면 판매가 중심이었던 중년 여성의류 매장들이 밀집한 한 상가는 임대료를 120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낮췄음에도 대부분의 상인들은 이마저도 부담스러워하며 장사를 접는 걸 고려하고 있다.

중년 여성의류를 판매하는 이덕수(아가다·동대문시장 준본당)씨는 “대부분 대면 판매로 고객을 유치했던 제 입장에선 코로나19가 가장 큰 재앙”이었다며 “IMF, 2008년 경제위기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번 연말은 그야말로 ‘얼음 지갑’”이라고 덧붙였다.

남대문시장과 용문전통시장 등 다른 시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연말 특수를 노렸지만 시장은 어느 때보다 한산하다. 남대문시장에서 수입 향수와 샴푸 등을 판매하고 있는 남대문시장 준본당 홍원표(베드로) 사목회장은 “크리스마스 전후가 선물 시즌이라 좀 팔아야 하는데, 올해는 거리두기가 강화되는 바람에 매장 문은 열었지만, 실제로 장사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용문시장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김자재(마리아·서울 용산본당)씨는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절반 정도로 줄어 가게 월세 내기도 빠듯한 상황이다. 김씨를 제외한 시장 내 미용실 두 군데는 아예 문을 닫았다. 옷가게를 운영하는 배진수(파울리나·서울 용산본당)씨는 “어제 오늘 손님을 한 명도 못 받았다”며 “코로나19 이전 북적북적했던 시장 모습이 그저 그립기만 하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북적여야 할 연말연시, 서울 동대문시장 상가에는 물건만 수북이 쌓여있다.

서울 동대문시장 준본당 박명근 신부와 신자들이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 미사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신앙 안에서 발견하는 희망

“지금 상황에서 신앙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현재 상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마음으로 신앙에 기대고 있다. 상인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조금은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바라보며, 신앙의 힘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동대문시장 준본당 신자 상인들은 상가별로 소통하며 틈날 때마다 고리기도 형식 묵주기도를 이어간다. 또 일을 시작하기 전 상가 앞에 위치한 성당을 찾아 기도하며 더 나은 내일을 희망한다.

동대문시장 준본당 주임 박명근 클레멘스 신부는 매주 금요일 본당 상인들을 위해 성시간을 봉헌하고, 코로나19가 잦아들면 시장 상인들을 직접 찾아 안부를 묻고 안수기도를 하기도 했다. 상인들은 박 신부의 관심을 통해 많은 힘을 얻고 있으며, 교회가 큰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밝혔다.

박 신부는 “코로나19는 시장을 터전으로 살아온 상인들에게 여태껏 없었던 재난”이라며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신앙생활도 불규칙한 가운데, 상인들이 신앙 안에서 위로받고 이 위기를 이겨나갈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고 밝혔다.

남대문시장 준본당은 어려운 시기를 겪는 신자 상인들을 위해 미사 시간을 늘렸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원제한이 생기자, 토요일 같은 경우 신자들이 분산될 수 있도록 정오와 오후 5시, 오후 6시로 나눠 안전하게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성당에는 이 시기를 예수님께 의지하며 신앙을 돈독히 하려는 신자들의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이어지고 있다.

신앙 안에서 희망은 이웃들과 함께할 때 더 큰 빛을 발한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김연희씨. 하지만 그는 본당 공동체의 관심과 기도로 빨리 회복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주변 신자 상인들은 자주 김씨의 안부를 물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치유를 위한 기도를 바쳤다. 그 덕에 김씨는 주님 성탄 대축일을 이틀 앞두고 완치됐다.

김자재씨는 가게 월세를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를 만나는 이들은 빈손으로 가는 일이 없다. 김씨는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베풀며 희망을 전하고 있다. 그는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라며 “사랑의 마음으로 봉사하고 나누다 보면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참 어려운 시기지만 우리와 늘 함께 계시는 주님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그 희망을 주변 이웃들과 나누다 보면, 언젠가 밝은 빛이 우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 steelheart@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