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평화를 이루는 말씀의 힘

박용욱(미카엘) 신부 (대구대교구 사목연구소장)
입력일 2021-12-28 수정일 2021-12-29 발행일 2022-01-02 제 3276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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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타인에게 좋은 말을 전하는 이는
하느님 은총 전하는 축복의 사제
저주와 악담, 갈등과 조롱 벗어나
선한 말로 사랑과 평화 실천하길

디에고 벨라스케스 ‘성모 대관식’.

교회는 새해 첫날을 천주의 어머니 마리아 대축일로 경축하면서 동시에 세계 평화의 날로 지냅니다. 이날 전례 중에 읽는 독서들을 꿰뚫는 한 마디가 있다면 ‘말씀’일 것입니다. ‘예언자들을 통해서 여러 번 말씀하시고, 이 마지막 때에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복음환호송; 히브 1,1~2) 하느님의 모습이 성경을 통해 부각됩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는 ‘아론의 축복’(민수 6,22~27)을 전합니다. 아론은 구약이 기록하는 첫 번째 대제사장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을 맡습니다. 그 직분을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는 ‘말’입니다.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선택된 것도 모세보다 말을 잘 전했기 때문이었지요.(탈출 7,1 이하 참조)

탈출기에서 모세와 아론을 거쳐 전해진 하느님 말씀은 이집트를 뒤흔드는 무서운 위력을 드러내며 파라오의 마음을 돌립니다. 하느님 말씀은 그처럼 인간을 압도하는 강력한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른 한 편, 하느님 말씀은 시편이 말하듯 ‘꿀보다 감미로운’(시편 119, 103) 것입니다. 그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 그러니까 제사장들이 이스라엘에게 축복하면(민수 6,24) 하느님께서 거기에 축복을 내리셔서 그들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며’(25절) ‘평화를 베푸십니다.’(26절) 라틴어판 성경인 불가타에서는 제사장들이 말하는 ‘축복’과 하느님이 내리시는 ‘축복’을 베네디체레(Benedicere)라는 한 단어로 옮겼습니다.

좋다는 의미를 가진 베네와 말하다는 뜻의 디체레가 결합되었으니 좋은 말을 한다, 혹은 선하게 말한다는 뜻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선한 마음으로 좋은 말을 해주면 하느님의 은총으로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하느님이 인간에게 좋게 말씀하시듯이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은 하느님의 보호와 은총, 그리고 평화를 전하는 축복의 사제요 예언자가 되는 것입니다.

말이 가진 이런 양면성, 곧 말씀의 강력함과 감미로움을 가깝게 실감할 수 있는 자리가 고해소입니다. 말 한 마디로 피폐해진 영혼이 거기 있고, 칼날처럼 벼린 말로 남의 가슴을 헤집은 죄책이 거기 있습니다. 마음속에 단단하게 옹이진 말 때문에 몸부림치는 원망도 있고, 말로 뱉어 놓고 그것을 지키지 못한 회한도 있습니다.

용기를 내서 고해소까지는 왔으되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이 혀끝에서 맴도는가 하면, 들어야 했지만 듣지 못한 말 때문에 마음 상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말이 가진 그 불완전함을 뚫고 선한 마음으로 고백하는 순간, 하느님 용서의 말씀이 사제의 입을 통해 울립니다. “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교우의 죄를 용서합니다.” 후회와 부끄러움으로 얼룩진 영혼을 새 삶의 희망으로 빛나게 하는 용서의 말씀입니다.

‘말씀’이라는 것이 이토록 강력하고도 감미로운 것이기에,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은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목자들이 예수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전해 주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놀라워 할’(루카 2,18) 뿐이었지만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깁니다.(19절) 말씀이 되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마리아의 이 신중함과 사려 깊음은 그를 신앙의 모범이 되게 합니다.

경이로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받은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영 덕분에 ‘아빠 아버지’를 외칠 수 있는 그분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없이 고귀한 말씀을 받은 사람은 하느님께서 그러시듯이 선한 마음으로 말하게 됩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예레 20,9)라고 고백한 바 있지요.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이 아니라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긴 끝에 심장 속에서부터 뿜어져 온 하느님의 말씀은 곧 축복의 말이 됩니다. 사람들을 지켜주고 은혜를 베풀며 평화를 가져오는 하느님 말씀의 힘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천주의 어머니 마리아 대축일을 경축하면서 이날을 세계 평화의 날로 지냅니다. 하지만 성 바오로 6세 교황께서 전 세계 신앙인들이 평화를 위해 기도하자고 촉구하신 그 첫해부터 세계는 평화를 위협하는 폭력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1968년 1월이 다 지나기도 전에 월남에서는 구정 대공세가 시작되고 원산 앞바다에서 푸에블로호가 나포되어 전쟁 직전까지 갑니다.

게다가 서구 사회 전체는 68혁명의 격랑을 겪습니다. 이 와중에 상대를 깎아내리고 조롱하며 저주하는 말이 홍수처럼 넘실댔습니다. 흔히들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하지요. 전 세계 신앙인들이 평화를 위해 기도하던 첫날의 마음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길’ 줄 알았다면, 그리하여 선한 마음으로 평화를 위해 말할 줄 알았다면, 세상이 저주와 악담의 흙탕물을 뒤집어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 말씀의 식탁과 성찬의 식탁에서 힘을 얻은 신앙인들은 ‘가서 복음을 실천합시다’라는 말로 파견을 받아 세상 속으로 들어갑니다. 오늘의 세상은 선한 말, 좋은 말, 축복의 말보다 조롱과 비아냥과 저주의 말을 더 쉽게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특히 세대 갈등, 성별 갈등, 정치적 이해관계의 갈등 같은 긴장 상황 속에서 많은 이들이 말로 상대를 단죄하고 비웃으며 저주합니다. 상대의 입을 막아버리겠다는 폭력적인 마음을 논리라는 형식을 거쳐 독설로 뽑아내는 형국입니다.

그러나 평화는 독설과 저주로 상대를 제압하는 데서 오지 않습니다. 평화는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겨 선한 말을 하는 가운데 성취될 것입니다.

박용욱(미카엘) 신부 (대구대교구 사목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