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프란치스코 교황 "무관심이 사람을 죽인다”

입력일 2021-12-07 수정일 2021-12-07 발행일 2021-12-12 제 3273호 6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사이프러스·그리스 사목방문… 레스보스섬 난민캠프 다시 찾아 위로
이주민·난민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 관심 일깨워
민주주의 퇴조 비판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월 5일 그리스 레스보스섬 난민캠프를 방문해 이주민들로부터 쪽지를 받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CNS

【외신종합】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6년 방문했던 그리스 레스보스섬 난민 캠프를 다시 찾았다.

레스보스섬 난민캠프는 교황이 지난 2016년 4월 16일 방문 이후 유럽 난민 문제의 심각성을 웅변하는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교황은 당시 레스보스섬 모리아 난민캠프를 방문, 깊은 연민과 연대의 의지를 표시하고 어린이 6명을 포함한 시리아 난민 12명을 전용기편으로 로마로 데려와 정착을 지원했다.

12월 2~6일 사이프러스와 그리스를 순방한 교황은 나흘째인 5일 레스보스섬 난민 캠프를 다시 찾았다. 교황의 방문은 2시간 남짓 짧았지만 그 메시지는 강력하고 명확했다. 그 메시지는 “무관심이 사람을 죽인다”는 질책이었다.

교황은 이날 방문에서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 난민 문제를 남에게 전가하지 말라”며 “그것이 아무에게도 문제가 되지 않는 듯이, 그것이 다른 누군가가 짊어져야 할 무의미한 짐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다.

교황이 처음 방문한 2016년 레스보스섬의 난민 캠프는 유럽 전역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하지만 2020년 연쇄 방화가 발생한 뒤 1만2000여 명이 수용된 이 난민캠프는 극도의 어려움에 처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월 3일 사이프러스 니코시아 GSP스타디움에서 미사를 집정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CNS

교황은 이날 난민캠프 일대를 약 한 시간가량 둘러보면서 난민 어린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프가니스탄, 시리아와 콩고 등으로부터 온 난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교황은 “나는 여러분의 얼굴을 보고 여러분의 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왔다”며 “두려움과 기대로 가득한 눈, 폭력과 가난을 목격하고, 눈물이 흘러넘치는 그런 눈을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교황은 최근 일부 유럽 국가 지도자들이 자국 국경을 난민들이 넘지 못하도록 장벽을 세우자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 크게 실망감을 표시하고 “더 높은 벽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함께 공존할 수도 없다”며 “난민들이 자기 땅을 떠나게 만드는 폭력과 갈등의 뿌리를 뽑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이날 레스보스섬 방문에 앞서, 2~4일 사이프러스 수도 니코시아를 방문하고 4일 오후 그리스 아테네에 도착해 6일까지 머문 뒤 교황청으로 돌아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리스 사목방문 중인 12월 6일 아테네 성 디오니시오 학교에서 청년들과의 만남 중 전통복장을 한 댄서들의 춤을 감상하고 있다. CNS

교황의 이번 순방은 해당 지역에 대한 사목방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주민과 난민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일깨우려는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사이프러스와 그리스 모두 중동 및 아프리카, 유럽으로 이어지는 요충지로서 수많은 이주민과 난민들이 유입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목방문의 첫 방문지인 사이프러스는 1974년 터키군이 침공하면서 분단됐다. 북사이프러스에는 터키계 사이프러스인이 살고 있으며 남사이프러스에는 그리스계 사이프러스인이 살고 있다. 교황은 남북사이프러스 간의 긴장과 갈등을 신앙으로 극복하기를 촉구했다. 교황청은 특히 사이프러스에서 이주민 50여 명을 이탈리아에 데려와 정착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4일 그리스 아테네에 도착한 교황은 대통령궁에서 카테리나 사켈라로풀루 대통령 등 정치인들을 향한 연설에서 “그리스는 민주주의의 발상지”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교황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권위주의와 인기영합주의의 득세로 민주주의 퇴조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황은 또 이날 그리스정교회 아테네 총대주교 예로니모 2세와 만난 자리에서 교회의 분열을 야기한 가톨릭교회의 과오에 대해 용서를 청하고, 가톨릭과 동방교회 신자들은 더 위대한 일치를 위해서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