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세상의 빛] 146. 복음과 사회교리"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 13,14)

입력일 2021-12-01 수정일 2021-12-01 발행일 2021-12-05 제 3272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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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사회교리」410항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신앙인
이웃에 대해 사랑의 책임 지녀
소외된 이웃에 미안한 마음으로
함께 배려하고 돌보는 정신 필요

“너 외과 의사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뭔지 아냐?

‘살리지도 못할 거 왜 수술을 했냐.’

그 다음 많이 듣는 말이 뭔지 알아? ‘원래는 괜찮았는데 수술하고 나서 잘못됐다’야.

우리들 일이라는 게 사람 살리겠다고 하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원망과 욕도 같이 들어야 하는 직업이야. 어쨌든 사람 몸에 칼 대는 일이니까. 마음 진정되는 대로 올라가서 사과드려. 거기까지 해야 치료의 끝이다.”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1 18회 중)

■ 미안했던 하루

본당 소임 시절 환우들을 위해 봉성체를 다니곤 했습니다. 많게는 하루에 20~30여 집도 다녔는데,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이셨습니다. 어느 날 지하 단칸방에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오랜만에 방문했더니 넘어지셔서 허리를 다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시고 병원에 갈 가족도 없고, 혼자서는 갈 엄두도 나지 않아 아파도 그냥 참고 지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당은 못 가지만 집에서 묵주기도를 혼자 바치신다고 말하셨습니다. 봉성체를 하며 정성껏 기도하고 손을 잡아드리며 위로를 드리는데 할머니께서 고맙다며 우셨습니다.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순번을 기다리는 다른 환우가 있어서 성체만 영해 드리고 빨리 가야 했는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방문하지만 가고 싶은 성당도 못 가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 좁고 남루한 방에서 이분에게 한 달은 얼마나 길까? 가난과 외로움을 남에게 탓할 수만은 없지만, 이분의 궁핍한 형편은 얼마나 고단하고 슬플까, 이런 분들이 또 얼마나 많을까, 나는 이런 교우들의 처지를 외면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 속에서 하느님과 교우들에게 미안함을 느낀 긴 하루였습니다.

■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운 마음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하며 가장 힘이 많이 드는 단어 중 하나, 바로 책임입니다. 책임은 맡아서 행해야 할 의무를 진다는 의미와 내가 실행한 모든 행위의 결과를 내가 부담한다는 무거운 뜻도 있습니다. 우리 신앙에서도 책임의 중요성이 종종 이야기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세상을 돌볼 책임을 주셨으며(창세 1,28),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고 돌볼 책임을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3장)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가정과 가족, 이웃과 세상에 대해 사랑의 책임이 있고,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도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1743항)

하지만 우리 신앙에서 책임은 더 넓고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단순히 함께 머물고 같이 사는 수준이 아니라 서로 돕고 돌보는 친교의 차원, 서로에게 고마운 빚을 지고 있다는 인식, 내 일처럼 이웃을 대하는 마음, 그리고 용서와 화해입니다. 하느님께서 역사 안에서 인간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고 신앙인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며 교회 공동체는 세상 안에서 세상과 함께 걸어갑니다. 여기에는 건강한 책임과 실천이 요청됩니다.

■ 우리가 보는 그 사람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코로나19는 많은 어려움과 함께 우리에게 정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주었습니다. 바로 함께함과 이웃에 대한 책임입니다. 2021년 한 해 에너지, 기술과학, 제조 분야 등에서 세계를 빛낸 10대 기술이 발표됐습니다. 새로운 기술들은 최첨단 주거환경, 편리한 쇼핑, 멋진 차를 가져다 주는 등 우리의 삶을 윤택하고 편리하게 해줄 것입니다.

하지만 이웃사랑과 나눔이 없이 사회와 세상은 결코 행복해지지 못합니다. 다수의 이익이나 화려한 번영보다 한 사람 삶의 무게를 더 무겁게 느끼는 사회가 돼야 하고 이윤과 돈벌이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이웃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함께 배려하고 돌보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한계가 분명한 정치 상황을 바라보며 탄식과 아쉬움이 쏟아지지만 부족한 것을 채우는 우리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바로 이웃사랑과 나눔, 봉사 그리고 그간 돌보지 못한 가족과 이웃에 대한 미안한 마음입니다. 대림 제2주일은 인권 주일입니다. 민주주의, 건강한 정치의 회복을 지향하고 세계 곳곳의 고통받는 이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가까이 있는 가족과 이웃을 위한 작은 관심과 사랑의 실천이 요청됩니다.

“책임 있는 권위란 봉사의 정신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덕목들(인내, 겸손, 온건, 애덕, 함께하려는 노력)에 따라 행사되는 권위, 명예나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공동선을 활동의 참된 목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행사하는 권위를 의미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10항)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