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상해 쉬자후이 성당에서 / 유시연

유시연(레아) 소설가
입력일 2021-11-09 수정일 2021-11-09 발행일 2021-11-14 제 326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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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해 주교좌성당인 쉬자후이 성당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유서 깊은 건축물이다. 상해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는 딸의 안내로 몇 해 전에 남편 아오스딩과 쉬자후이 성당을 방문했다. 애국교회와 지하교회 문제가 불거지던 때여서 은근히 염려가 됐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성당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교황 사진이 액자에 담겨 성물을 파는 정원 가운데에 떡하니 놓여 있었다. 확실한 로마 가톨릭이었다. 미사 분위기는 한국 성당과 비슷했다. 약간은 엄숙한 표정과 경직된 태도, 차림새가 소박한 사람들, 이 모든 것이 묘하게 안정감을 주었다. 성가대가 4부 합창을 하는 순간 지휘자의 열정적인 지휘가 눈에 들어왔다. 성가책을 펴고 따라 부르려던 순간 깜짝 놀랐다. 음표는 간데 없고 점과 아라비아 숫자만 적혀 있었다. 칼림바와 타브 악보도 음표와 숫자가 있는 터라 그 성가책은 생소했다.

먼 도시와 낯선 나라로 여행을 할 때면 성당을 찾아 주일 미사에 참여하곤 한다. 새로운 문화와 문명에 대한 탐구와 호기심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조선의 연행사를 떠올린다. 연경으로 가는 사신단 일원이 되어 조선을 떠나온 사람들은 주머니를 털어 많은 서적을 사갔는데 서양인 선교사가 머무는 성당에 들르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먼저 독일인 신부와 신뢰를 쌓은 인물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던 소현세자다. 그는 북경 남천주당의 서양인 신부와 친분을 유지했다. 아담 샬과의 만남은 황비묵 신부가 주선해 이뤄졌다. 푸른 눈의 선교사와 동국에서 온 왕자의 만남은 서로에 대한 호감을 넘어 친밀한 관계로 이어진다. 소현세자가 특히 관심을 가진 분야는 천문학과 천주교다. 그들은 천문, 지리, 수학, 서양의 과학문명에 대해 토론했으며 귀국하면 천문학을 간행해 널리 읽히겠다고 말할 정도로 관심을 표한다.

명황조가 무너지고 청황조가 들어서자 소현세자는 인질 생활에서 풀려나 귀국길에 오른다. 소현세자는 조선에 신부(神父)를 파견해줄 것을 요청했고 아담 샬은 천주교 신자인 환관과 궁녀를 귀국길에 딸려 보낸다. 이방송, 장삼외, 유중림, 곡풍등 등을 대동하고 소현세자는 꿈에 그리던 고국 땅을 밟는다. 안타깝게도 소현세자는 귀국하자마자 두 달여 후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다하고 동행했던 환관과 궁녀들은 청국으로 돌아간다.

세계와 조선의 운명에 대해 많은 고민과 연구를 했던 소현세자가 죽음으로써 동국의 선교를 꿈꾸던 선교사들의 희망이 일시적으로 정지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조선에 천주교가 전래되기 위한 작은 씨앗이었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그러했듯이 중국 남경서점에 들러 서적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3층으로 된 서점 규모는 미로처럼 꼬불거렸으며 비밀스러웠다. 기념품을 파는 곳과 문구류를 진열해놓은 곳에는 청년들로 붐볐다. 책쾌(책장수)를 통해 한두 권씩 감질나게 책을 구매했던 조선 지식인에게 청국의 서점 규모는 부러움과 놀라움이었으리라. 세계의 문명과 문화를 만나기 위해서는 중국이라는 문을 통해야만 했다. 신라가 청해진 교역을 통해 아랍문명과 교류한 것을 생각하면 조선은 폐쇄적인 나라였다.

갑갑하고 어두운 환경을 뚫고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지적 갈망에 목말라하던 지식인들의 학구열과 탐구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더 넓게는 하느님의 숨은 뜻이 예비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느님의 계획은 은밀히 진행 중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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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연(레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