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상)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21-11-09 수정일 2021-11-09 발행일 2021-11-14 제 3269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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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산 사제’ 선종완 신부가 설립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설립자 선종완 신부(맨 왼쪽)와 수녀들.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제공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총원장 정복례 수녀)는 ‘성경대로 생각하고 성경대로 실천하는 수녀회’다. ‘말씀으로 산 사제’ 선종완 신부가 설립한 수녀회로, 삶의 중심에 말씀을 두고 말씀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1915년 8월 8일 강원도에서 태어난 선 신부는 자신의 삶을 말씀으로 살았다. 신앙심 깊은 가정에서 부모의 기도 생활과 전교 활동을 보며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신앙의 싹을 틔웠고, 성당을 놀이터와 배움터로 삼으며 성장했다. 성경 연구에 기초가 되는 외국어 습득을 위해 열성을 다했고, 1941년 부제품을 받을 당시부터 이미 성서 연구가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듬해 사제품을 받고 1945년 경성천주공교신학교(현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성서학 교수로 임명된 그는 1948년 10월부터 4년 가까이 로마와 예루살렘에서 성경을 공부했고, 귀국해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복직했다. 일생을 신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친 그는 한국교회 최초로 구약 성경을 단독 번역했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성서 공동번역위원회가 구성될 당시 가톨릭 측 구약 위원으로서 공동번역에 혼신을 다하는 등 늘 말씀과 함께했다.

이렇게 말씀을 따르고 말씀을 알린 그는 그 열정을 토대로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를 설립했다. 말씀을 학문으로만이 아닌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1960년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인 3월 25일 말씀을 증거하는 삶을 사는 수녀회를 창설한 것이다.

유산으로 받은 땅을 팔고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신천리에 수도원 부지를 마련한지 2년 만인 설립 당일, 선 신부의 성경 번역 작업을 돕던 자매 4명이 첫 지원자로 입회했고, 이는 ‘서울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영보 수녀회’(성모영보수녀회)라는 이름으로 첫발을 뗐다.

철저한 기도와 노동의 관상적 반봉쇄 공동체로 시작한 수녀회는 1976년 성 라자로 마을에 진출하며 사회복지 사도직에 투신하는 등 현재는 관상적 활동 수도회로 자리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소속 수도회로 출발한 수녀회는 교구 신설 등으로 1961년 인천교구, 1963년 수원교구 소속 수도회가 됐고, 1969년 8월 22일 수원교구에서 정식으로 인가받았다.

명칭은 2011년 회헌을 개정하면서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로 바뀌었다. 본원은 1967년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리로, 1982년 과천면 문원리로 두 차례 이동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특별히 말씀을 증거하는 삶을 사는 수녀회를 설립한 데에 대해 선 신부는 성령의 이끄심임을 강조했다. 책 「선종완」에는 그와 동료 사제 오기순 신부의 대화가 나오는데, 선 신부는 수녀회 설립에 본격적으로 나서기에 앞서 하느님 뜻에 충실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오 신부에게 부탁했다.

얼마 뒤 오 신부를 찾아온 선 신부는 “성령께서 이루시려는 바를 깨달았으니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고 말했고, 그렇게 하느님 부르심에 적극 응답한 결과 지금까지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가 말씀을 증거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