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특별기고] 문재인 대통령의 두 번째 교황 만남을 바라보며

이백만(요셉)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입력일 2021-11-02 수정일 2021-11-03 발행일 2021-11-07 제 3268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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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도 지지하는 교황 방북… 성사되면 북미 관계 개선될 것
■ ‘프라티칸테’(독실한 가톨릭 신자)
문 대통령과 바이든 美 대통령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공유
문 대통령 전한 교황 방북 의사
바이든 “반가운 소식”이라 화답
■ ‘폰티펙스’(다리를 놓는 사람)
교황 방북 만약 성사된다면
한반도 외교 지형 바꿀 사건
김정은에 체제개방 유도하고
북미 수교 마중물 효과도 기대 

문재인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10월 29일 교황청 교황 집무실에서 한반도 평화 등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은 10월 29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환담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교황에게 방북을 요청했고, 교황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초청장을 보내주면 기꺼이 가겠다”고 흔쾌히 답했다. 이백만(요셉)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의 기고를 통해 한반도 평화와 더 나아가 세계평화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교황 방북의 의미를 알아본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10월 29일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연이어 만나면서 평소와 다른 감회를 느꼈을 것입니다. 세계에서 두 명밖에 없는 ‘프라티칸테’(praticante) 정치 지도자를 만나 글로벌 이슈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이 두 대통령과 개별적으로 만나긴 했지만, 공통 의제 가운데 하나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였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교황님과의 개별 면담은 배석자 없이 완전 독대로 진행되며 대화 내용은 비밀에 붙여집니다. 고해성사와 같은 개념입니다. 면담자가 대화 내용을 공개하려면 사전에 교황청의 양해를 얻어야 합니다. 문 대통령과의 20분 독대,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과의 75분 독대, 교황님과 당사자 외에는 그 내용을 아무도 모릅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초청장을 보내주면, 기꺼이 가겠다”는 교황님의 말씀만 공개했을 뿐입니다.

한국의 최대 관심사는 교황님의 방북 가능성입니다. 공식적인 발표만으로는 구체적인 대화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면담 전후 맥락과 면담 분위기 등으로 관측과 해석만 가능할 뿐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포인트는 세 개입니다. 하나는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프라티칸테라는 사실이고, 둘째는 바이든 대통령의 독대가 다음 외교일정에 차질을 빚을 정도로 예정시간보다 긴 75분 동안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셋째는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다음날 교황님의 방북 의지를 공유했다는 점입니다.

이탈리아어 프라티칸테! 주일마다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는 가톨릭 신자, 또는 실질적인 신앙활동을 하는 가톨릭 신자를 의미합니다.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면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주교황청 대사 시절, 교황청이 파악하기로는 세계 주요국의 국가 정상 가운데 프라티칸테는 문 대통령이 유일했습니다. 유럽이나 남미의 경우 가톨릭 신자인 국가 정상이 적지 않았지만 프라티칸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문 대통령 못지않은 프라티칸테입니다. 세계 질서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미국 대통령이 프라티칸테라는 사실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은 진보적인 리버럴 가톨릭 신자입니다. 문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성 요한 23세 교황님 이후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교황님과 문재인과 바이든, 세 분 지도자의 대화 가운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관련된 내용을 추론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교황님이 문 대통령을 먼저 만나고 바이든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런 외교일정을 짜는데 상당한 노력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교황님은 문 대통령으로부터 들은 한반도 정세를 참고삼아 바이든 대통령과 이야기했을 게 분명합니다. 교황님과 문 대통령과의 대화는 3년 전과 큰 차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황님과 바이든의 독대는 차원이 다릅니다. 바이든은 실질적인 ‘세계 대통령’입니다. 그의 정보력과 정치적 영향력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교황님은 바이든에게 미국과 쿠바의 국교정상화 경험을 강조하면서 그 역할을 한반도에서도 해달라고 당부했을 것입니다.

교황의 라틴어 표현 ‘폰티펙스’(Pontifex)는 ‘다리를 놓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2014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셨습니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 오바마였고 부통령이 바이든이었습니다. 교황청은 외교전문가인 바이든과 실무작업을 했습니다. 교황님은 평양과 서울, 평양과 워싱턴 사이에도 다리를 놓아 주려 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10월 30일 문 대통령이 전해주는 교황 방북 의사에 대해 “반가운 소식”이라고 화답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예사스런 일이 아닙니다.

교황님의 방북의지는 정말 대단합니다. 제가 주교황청 대사로서 3년간 일하면서 직접 들었거나 간접적으로 확인한 교황님의 어록은 이렇습니다. “내 가슴과 머리에 항상 한반도가 있다.”(2018.2) “공식 초청장을 보내주면, 북한에 갈 준비가 되어 있다.”(2018.10) “남북한 지도자와 손잡고 판문점을 걷는 것이 나의 꿈이다.”(2019.1) “서울과 평양을 동시에 방문하고 싶다.”(2020.10)

교황 방북은 단순한 종교 이벤트가 아닙니다. 교황 방북이 성사되면, 이것은 한반도의 외교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 될 수 있습니다. 교황 전용기가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내리고 교황님이 김정은 위원장과 포옹(악수)할 때, 한국의 모든 TV 채널은 물론이고 CNN, BBC 등 외국의 유력한 TV 채널이 이 장면을 생중계할 것입니다. 실로 가슴 떨리는 일 아닙니까. 이뿐이겠습니까. 교황 방북은 북한의 체제개방을 유도하고,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활동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북미 관계 개선을 견인하는 효과도 있을 것입니다.

교황의 방북 추진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의 회고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1991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방북을 추진하기 위해 북한 외무성에 특별 상무조(TF팀)를 가동했습니다. 그러나 ‘종교(가톨릭)가 무서워’ 교황 방북 추진 프로젝트를 3개월 만에 포기했다고 합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중학교 시절을 유럽(스위스)에서 보낸 관계로 가톨릭에 대한 이해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제 정세도 김일성 주석 때와는 많이 다릅니다. 교황 방북 가능성이 그 만큼 높은 이유입니다. 2018년 10월 문 대통령의 요청으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방북 초청의사를 밝힌 뒤 평양과 교황청의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2차 북미정상회담(베트남 하노이, 2019년 2월 말)이 성과를 낼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말입니다. 실제로 2019년 초 교황 방북이 가시권에 들어올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하노이 노딜(Hanoi No Deal) 선언으로 모든 논의가 중지되고 말았습니다. 하노이 노딜의 주인공이었던 트럼프가 물러나고 바이든이 등장하면서 교황 방북 프로젝트가 본격 재논의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교황님 방북의 키는 김정은 위원장이 쥐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초청장을 보내야 교황 방북이 가능하니까 그렇지요. 김정은이 과연 초청장을 보낼까요? 아마도 교황님 방북 문제를 놓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김정은에게 교황 방북의 득실은 분명합니다. 북한 외교의 최대 목표는 북미 관계 개선입니다. 북한은 미국과의 수교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교황 방북이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도 북미 관계 개선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외교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북미 관계 개선으로 체제 보장을 원하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은 교황의 북한 방문이라는 카드를 신중하게 검토하면서 백악관의 분위기를 보고 있을 것이라고!

이백만(요셉)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