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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만들자] 생명의 보금자리 ‘가정’ - 가정에서부터 사랑과 생명의 문화 (10)말기- 호스피스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21-11-02 수정일 2021-11-02 발행일 2021-11-07 제 3268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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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과 인간적 품위 지니도록 도와
부활의 희망으로 삶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잘 맞이하도록 준비시키는 가족 구성원들의 사랑이 가장 중요
인간으로서 존엄과 품위 지키며 자연적인 죽음을 돕는 호스피스 생명 위한 교육·홍보에도 포함돼야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오늘 나에게 다가온 죽음이 내일은 너에게 갈 테니 늘 죽음을 생각하며 잘 살라는 의미의 이 격언은 누구에게나 삶의 한 부분이 죽음임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모두가 예외일 수 없는 죽음 앞에서 가정은 어떻게 말기 생명을 돌보고 사랑할 수 있을까. ‘가정에서부터 사랑과 생명의 문화’ 기획 이번 편에서는 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말기 생명 돌봄이 가정에서부터 필요한 이유와 함께 그 실천 방법인 ‘호스피스’, 이를 돕기 위한 한국교회 활동에 대해 살펴본다.

■ 죽음을 아름답게 맞이하는 공동체 ‘가정’

가정은 ‘죽음을 아름답게 맞이하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주교회의는 가정을 위한 교서 「가정, 사랑과 생명의 터전」 30항에서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아무리 굳센 믿음을 가지려고 해도 죽음 앞에서 좌절과 공포·의혹의 소용돌이 속에서 번민하게 되는데, 이 같은 상황에서 그리스도인 가정은 가족 구성원이 죽음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잘 준비시킬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인 가정의 사명에 대해 밝히면서 주교회의는 죽음의 준비란 자포자기가 아닌 하느님을 만날 희망, 부활의 희망으로 삶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고, “이상적인 그리스도인 가정은 인생의 종점에 다다른 구성원이 온 가족의 따뜻한 사랑과 배려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하는 최선의 도움을 주는 곳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지금 이 순간과 사람들을 더 소중히”

이처럼 ‘죽음을 아름답게 맞이하는 공동체’ 가정은 말기 생명 돌봄으로 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 죽음을 앞둔 이를 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그가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말기 생명 돌봄은 가족 구성원에게도 삶과 죽음의 의미,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해 살아 있는 동안 더욱 많이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자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그녀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인터뷰해 쓴 책 「인생 수업」에는 한 여성이 등장한다. 이 여성은 남편을 잃고 나서야 그가 자신에게 잠시 맡겨진 선물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지금 이 순간과 사람들을 훨씬 더 소중히 여기게 됐다”고 밝혔다. 저자들은 이러한 내용들과 관련해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은 사랑에서, 삶에서, 죽음의 순간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사랑은 바로 곁에 있어 주는 것이고 돌봐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 고통당하는 사람을 향한 연대성 교육

가정에서 이러한 말기 생명 돌봄은 ‘고통당하는 사람을 향한 연대성 교육’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죽음을 앞둔 생명을 잘 돌보는 행위로써 사람과 자녀에 대한 교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가정에서 고통과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잘 받아들이고 이를 자녀들에게도 알려 주는 것은 부모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렇기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인간 생명의 불가침성에 관한 회칙 「생명의 복음」 92항에서 “가정은 무엇보다도 자녀 양육을 통해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을 완수한다”며 “부모들이 자신들 주위에 있는 모든 종류의 고통에 민감하게 주의를 기울인다거나 더 나아가 그들이 가족 중 환자나 노인 구성원들에 대한 친밀함과 도움과 나눔의 태도를 기르는 데 성공한다면, 그 의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탈리아 전 국가 생명윤리위원회 위원 마리아 루이사 디 피에트로 교수 역시 저서 「생명 윤리, 교육 그리고 가정」에서 “가족은 환자를 간호하고 돌보는 일 외에도 고통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교육할 과제를 부여받는다”며 고통과 죽음의 참된 의미를 자녀에게 가르치고 증언하는 ‘고통당하는 사람을 향한 연대성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특별히 그는 환자나 노인 가족들에게 다가가 간호하며 고통을 나누는 태도를 발달시킴으로써 해당 교육이 가능하다며 말기 생명에게는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처지를 헤아리며 곁에 머물러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완화 의료병동에서 환자와 호스피스 봉사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성빈센트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의료진이 호스피스 환자를 돌보고 있다. 성빈센트병원 제공

■ 말기 생명 돌봄 실천 방법 ‘호스피스’

그렇다면 죽음을 아름답게 맞이하는 공동체 가정에서는 말기 생명 돌봄을 어떻게 잘 실천할 수 있을까. 관련 전문가들은 죽음을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말기 생명도, 그 가족도 함께 남은 시간을 마무리하며 말기 생명이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를 지혜로운 방법으로 제시한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와 그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는 행위로, 여생 동안 환자가 인간으로서 존엄하고 편안하게 눈감을 수 있도록 신체적·정서적·사회적·영적인 돌봄을 제공하고 그 가족에게는 슬픔과 고통을 잘 견디고 극복할 수 있도록 상담 등의 총체적인 돌봄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주교회의는 「한국 천주교 생명운동 지침」 37항과 44항에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생명 수호 활동이 이루어지기를 권고한다”며 생명을 위한 교육과 홍보에는 “‘말기 환자들이 인간적인 품위를 지니고 자연적인 죽음을 맞을 수 있게 도와주는 ‘호스피스’ 활동이 중요하다는 것’이 포함돼야 한다”고 당부한다.

■ 말기 생명과 그 가족을 위한 교회 돌봄 활동

현재 한국교회는 말기 생명과 그 가족을 위해 활발한 호스피스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국내 최초 가정방문 호스피스 기관으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가 운영하는 모현가정호스피스는 ‘내일이면 늦을, 오늘 돌봄이 필요한 영혼들을 위해’ 설립 이래 30여 년간 말기 환자들이 임종 때까지 삶을 집에서 평안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통증 완화와 영적 돌봄 등을 제공하고 있다. 전·진·상 의원에서도 의료진을 포함한 호스피스 팀이 말기 증상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그 가족들을 가정형·입원형 호스피스로 지원하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등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병원들은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를 운영하며 죽음을 맞는 이들이 하느님 나라에 대한 새로운 희망과 인간다운 품위를 지니도록 돕고 있다. 천주의성요한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등에서도 생의 마지막을 앞둔 이들과 그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호스피스완화의료팀장 라정란 수녀는 “가족은 사랑, 조건 없는 사랑”이라며 “자신의 마음대로 활동할 수 없는 말기 생명에게 가족의 돌봄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라 수녀는 “죽음을 앞둔 이들이 겪는 고통에는 신체적인 고통 외에도 정신적·영적인 고통 등이 있는데, 이 부분은 가족들이 도울 수 있다”며 “전문인의 도움과 가족의 도움으로 전인적인 돌봄을 제공하면 고통을 겪고 있는 말기 환자들이 편안하게 임종할 수 있고, 무엇보다 가정에서 눈을 감는다는 사실은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