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명예기자 단상] 마리아와 마르타

이승혜(프란치스카) 명예기자
입력일 2021-10-26 수정일 2021-10-26 발행일 2021-10-31 제 326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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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베르메르 ‘마르타와 마리아 집의 그리스도’.

내게 지금 가장 마음에 와닿고 영향을 끼치는 성경 구절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루카 복음서 10장 38절부터 42절에 나오는 마리아와 마르타 이야기이다.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시는데 그 ‘발치’에서 말씀을 듣는 마리아와 여러 가지 시중을 드는 마르타 사이에서 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저의 일을 돕도록 말씀 해달라”고 청하는 마르타에게 “마르타야, 너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지 말아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마르타의 성실한 행위가 ‘말씀을 듣는 행위보다 더 중요할 수 없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잔잔히 내 마음에 파장을 일으켰다. 내가 마리아 같았기 때문이다.

미사 참례 시 성당에 앉는 위치나 혹은 성당 소공동체에 참여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눈에 띄지 않으려는’ 나의 행동이 떠올랐다. 주변부의 일을 열심히 했지만, 신앙생활의 핵심적 위치를 점유하지는 못했다. 그러면서 나는 놓친 부분이 있었다. 소극적인 종교활동은 나의 신앙생활에서도 ‘정체’(停滯)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마리아 같은 주변부의 몫도 그리스도교 공동체적 목표 안에서는 매우 유의미한 일이다. 하지만 한 개인의 종교 생활 안에서 지속해서 그런 모습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하나의 ‘정체’이다.

이 성경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주변부의 여러 준비과정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씀을 듣는 행위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성령의 감도로 우리 안에 그 말씀을 각인하는 행위이다. 우리의 삶이 주님의 역사 안에 초대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인간은 주님의 구원 역사 안에 한 걸음 다가간다. 이전과 이후로 넘어가게 하는 말씀을 듣는 행위는 하느님의 초대에 응하는 결정적인 행동이다. 분명 마리아와 마르타는 예수님과의 대면의 중요성을 알았고 그것에 응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던 인물은 마리아였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적극적 행위를 통해 예수님께 나아가고 싶다. 정확한 그 말씀의 음성을 듣고 알고 싶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시는 듯하다. “프란치스카야, 너는 좋은 몫을 택했다”라고 말이다.

이승혜(프란치스카)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