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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의 날 기획 / 가톨릭 점자 콘텐츠, 어디까지 왔나

이재훈 기자
입력일 2021-10-26 수정일 2021-10-27 발행일 2021-10-31 제 3267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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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청 있어야 제작·보급되는 점자 전례서… 신앙 서적 찾기는 더 힘들어
2006년부터 점자 성경 발간
점자 전례서 보급 계획에 따라 각 교구·본당에 개정판 보급
점자책은 커서 휴대 어렵고 점자 익숙하지 않은 경우 많아 음성으로 된 전례서 보급 확대
신자들과의 개별 상담 통해 맞춤형 콘텐츠도 제공할 계획

한국 가톨릭 시각장애인 선교 협의회에서 발간한 레지오마리애 점자 교본을 다루고 있는 시각 장애인의 손.

11월 4일은 ‘점자의 날’이다. 1925년 일제 치하에서 일본어 점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조선인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훈민정음에 기반한 점자를 만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일제 강점기 우리만의 점자를 갈구했던 조선인 시각장애인들처럼 한국교회의 시각장애인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배우기 위해 점자 콘텐츠 개발에 노력해왔다. 그 시작은 1973년 시각장애인 평신도들이 주축이 된 국립 서울맹아학교 가톨릭학생회가 출판한 「가톨릭교회 교리서」였다. 이후 1979년 창립된 한국 가톨릭맹인선교회는 자체적으로 교리서와 음성 선교집 등을 발행했다.

평신도 시각장애인들이 중심이 돼 발간해왔던 점자 콘텐츠를 한국교회 차원에서 발간한 건 2006년부터였다. 당시 주교회의는 한국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협의회와 함께 점자 「성경」을 발간했다. 2년 뒤에는 「가톨릭 성가」와 「가톨릭 기도서」를 점자로 선보였다.

현재 한국교회 내 점자 콘텐츠에는 어떤 것이 있고 어떻게 사용되고 있을까?

우선 주교회의(의장 이용훈 주교)는 전례서인 성경, 성가, 기도서를 발행하고 있다. 전례서의 경우 교구별 시각장애인선교회 요청이 있을 경우, 한국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협의회(담당 김용태 신부, 이하 협의회)가 점자책 업체에 제작을 의뢰해 완성된 책을 배송하는 방식으로 보급하고 있다. 협의회 김의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무국장에 따르면, 점자 성경은 교구별로 시각장애인 예비자 교리 교재로 활용되며, 연간 100부 정도 주문 제작 의뢰가 들어오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점자 성경은 총 23권으로 이뤄져 있는데다 한 권 자체도 들고 다니기는 어려운 크기라 일부만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본당 활동에서 이용하기 위해 협의회가 자체 발간한 점자 상장례서, 레지오마리애 교본 등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점자 콘텐츠 제작을 위한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 점자 콘텐츠의 미래는 밝지 않다. 우선 시각장애인 중 대부분이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후천적 시각장애인이라 점자에 익숙지 않은 점을 들 수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시각장애인 신자들은 점자보다 음성을 선호한다.

주교회의가 한국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협의회와 함께 발간한 가톨릭 성가, 성경, 가톨릭기도서.

코로나19 대유행도 교회 내 점자 콘텐츠 유통에 큰 타격을 준 요인이다. 코로나19로 점자 성경 개정판 보급이 미뤄지고 미사 중에 유일하게 쓰이는 점자 서적인 가톨릭 성가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방역 수칙에 따라 성가를 부르는 것이 중단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점자책은 손가락으로 직접 만져야 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쓰면 감염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전례서를 제외하면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신앙 서적이 없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협의회 이인학(도미니코) 총무이사는 “전례서를 제외한 점자로 된 신앙 서적 발간에 가톨릭계 출판사들이 아직은 잘 나서지 않는 상황”이라며 “신앙에 대한 열망이 큰 시각장애인 신자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신앙 서적들을 접하길 원한다는 요구가 많아 어느 때보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협의회는 이를 극복하고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유경촌 주교)와 함께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점자 전례서 보급 5개년 계획에 따라, 각 교구와 본당에 개정된 점자 전례서를 보급하고 있다. 특히 점자보다 음성에 익숙해지는 시각장애인들이 많은 점을 고려해 음성으로 된 전례서 보급도 확대할 예정이다. 또 점자 정보 단말기 전용 소프트웨어 ‘온소리 로고스’의 기도문과 성가 업데이트 외에도 교회 내 성인 이야기를 점자 서적과 음성판으로 발간할 계획이다.

이 총무이사는 “코로나19로 신앙생활이 개별화되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맞춤형 사목으로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며 “점자 서적 보급을 중심으로 5개년 계획을 진행하고, 또한 시각장애인 신자와의 개별 상담 후 점자가 낯선 이들에겐 음성 콘텐츠를, 점자 정보 단말기 사용이 익숙한 분들에겐 단말기 전용 콘텐츠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재훈 기자 steelheart@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