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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희생과 선행 / 은주연

은주연(엘리사벳·제2대리구 분당성요한본당)
입력일 2021-10-12 수정일 2021-10-12 발행일 2021-10-17 제 3265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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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면 본당 보좌신부님의 영명축일이다. 영명축일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영적 선물에 대한 고지가 나오는데 그때마다 늘 ‘묵주기도’와 ‘사제를 위한 기도’ 등 몇 가지 기도에 체크를 해가며 매일 횟수를 집계한다. 그런데 내 집계에서 항상 매번 빠지는 항목이 있으니, 바로 ‘희생과 선행’이었다.

‘희생과 선행’을 봉헌하라는 의미일 텐데, 그동안 나는 이게 참 거창하고 크게 느껴져서 횟수를 채울 생각조차 못 했었다. 그런데 늘 공란으로 남겨두었던 그 ‘희생과 선행’이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생각되는 것이 아닌가. ‘희생이 뭐 별건가? 대단한 선행만 꼭 선행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치고 지나가니, ‘나도 한번 해볼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봉사 단체에 가입해 거창한 봉사활동을 한다든가, 커다란 기부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생활하면서 할 수 있는 아주 소소한 희생과 선행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각난 것이다.

이를테면 시간을 내서, 늘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엄마와 만나 차 한 잔 마시기, 데면데면하게 지냈던 아버지와 대화 나누어 보기, 가족들에게 친절하게 말하기, 남편에게 고맙다고 말하기, 아이들에게 화가 날 때 참아보기처럼 아주 소소한 것들이다.

이런 것들을 집계하면 적어도 한 달에 10번은 채울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선행이었는데, 가볍게 시작한 이 일은 뜻밖의 선물을 가져오기도 했다. 내 선행의 대가로 돌아오는 가족들의 환한 얼굴은 나에게도 기쁨이 되었다.

게다가 하면 할수록 할 수 있는 희생과 하고 싶은 선행의 목록이 늘어갔다. 지구를 위해 나의 편리함을 포기하는 일회용품 줄이기도 하나의 희생이 되었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를 타지 않거나 육식 섭취를 줄이는 것도 나의 작은 희생이자 선행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서서히 소원해져서 이제는 연락마저 뜸한 가족들에게 먼저 연락해 보는 일, 서운했던 마음을 풀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 보는 일 모두 ‘희생과 선행’을 하려고 일부러 마음먹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일들이었다.

희생과 선행, 어쩌면 그동안 너무 어렵게만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생활하는 순간순간 베풀 수 있는 나의 최선이 모두 희생과 선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참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런 나의 작은 노력들이 하느님께 드리는 아주 작은 선물이 되기를 바라본다.

그나저나 이 영적 선물 말이다, 모든 것이 비대면인 이 코로나19 시대에 뉴노멀이 되어도 충분히 좋지 않을까? 곧 돌아오는 우리 엄마, 미카엘라의 영명축일에도 영적 선물 한번 드려봐야겠다. 좋아하실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은주연(엘리사벳·제2대리구 분당성요한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