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604) ‘수도자보다 더 수도자다운…’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1-10-12 수정일 2021-10-12 발행일 2021-10-17 제 3265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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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개갑순교성지의 구석진 수풀 속에 있던 수국을 성지 입구에다 옮겨 심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녀석들이 꽃을 피울 때에는 성지 입구가 보기 좋았는데, 꽃이 지고 시간이 흐르자 성지 입구가 휑– 한 것이…! 무언가를 심어야 할 것 같은데 조건이 맞지 않아 주저하고 있던 어느 날. 광주와 화순에 사시는 연세가 지긋하신 자매님 두 분이 가끔 성지로 미사를 오시는데, 그날따라 두 분은 나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셨는지 먼저 말을 건네셨습니다.

“신부님, 여기 성지에 꽃나무가 필요하죠?”

“당연히 필요하죠.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저희들이 성지에 올 때마다 꽃나무가 피어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성지를 보는 마음은 누구나 비슷하네요. 그런데 성지 형편도 그렇고, 제가 요즘 하는 일들이 많아 시간도 없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서울에 있는 우리 동창 신부님을 꼬드겨, 며칠 동안 성지에서 지내게 하면서 꽃나무를 사다 심어 볼까 합니다.” “꽃나무가 필요하네요. 그럼 잘 되었어요. 저희 집 마당에 꽃나무들이 좀 있는데 그것들을 이리로 가져와서 심으면 좋겠네요.”

“혹시 무슨 꽃나무를?”

“무늬 둥굴레, 자란, 독일 붓꽃, 그리고 샤프란을 가져올게요.”

그리고 며칠 뒤 오전, 자매님 두 분은 차의 뒤 칸에 하나 가득, 종류별로 꽃나무들을 실어 오셨습니다. 그런 다음 두 분은 성지 입구 수국 주변에 꽃나무를 심으셨는데요. 그런데 자매님들이 가지고 온 꽃들을 대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얘들아, 너희들은 이제 성지로 이사를 왔단다. 그러니 여기서 순례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예쁘게 잘 크거라.”

그분들의 말을 엿듣는 데 웃음이 나왔습니다. 연세는 지긋하신데 마음은 15세 소녀 같이 느껴져서요. 자매님 두 분이 능숙한 솜씨로 성지 빈자리에 꽃나무를 심는 도중에 비까지 내렸습니다. 아니, 그분들은 비 오는 날을 정한 것 같았습니다. 비 때문에 걱정하는 나를 제쳐두고 그분들은 더 좋아라하며, 준비한 우비를 갈아입고 비를 맞으며 꽃나무를 심으셨습니다.

그러다 오후 3시가 되어 가자, 일을 잠시 마치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은 다음 순례자 미사에 들어오셨습니다. 미사가 끝나자마자 그분들은 다시 작업복을 갈아입으셨고, 오후 5시까지 일을 하셨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꽃나무를 다 심어 놓으니 성지가 한층 돋보였습니다. 일을 다 마칠 즈음, 나는 자매님들께 진심 고마움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자매님들,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그 나이에 이리 기쁘게 일을 하실 수 있으셔요?”

“저희는 기도 안에서 기쁨을 찾았기에 그런 것 같아요.”

“에고, 우리 수도자들보다 더 수도자 같으신 말씀을 하시네요.”

“사실, 저희 집 근처에는 수도원이 있어요. 그래서 매일 아침 거기 수도원에 가서 아침 성무일도를 함께 바치고, 미사를 봉헌해요. 그런 다음 성무일도 독서 기도를 바치고.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다 보면, 하루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 같아서 좋아요.”

“매일 아침, 미사 뿐 아니라, 거기 수도원에 계신 수사님들과 성무일도를 바치신다고요?”

“예. 너무 좋아요. 수사님들과 시편을 바치고 있으면 저의 삶, 희로애락을 하느님께 고백하는 것 같거든요.”

수도자이며 수도 사제라 말하는 나부터 - 앞으로 좀 더 정신을 차리며 수도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세상에는 수도자보다 더 수도자다운 신자 분들이 숨은 고수처럼 살고 있는 분들이 많기에…. 좀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수도자로 잘 살아야 하겠습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