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책에서 얻는 상상력과 지혜 / 박천조

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21-09-28 수정일 2021-09-28 발행일 2021-10-03 제 326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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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견문」이라는 책을 썼던 이병한 작가의 신간 소개를 듣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책 제목이 「단번도약, 북한 마스터 플랜」이었습니다.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와 저자가 생각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많은 상상을 해보게 됐습니다.

저자는 북쪽 최고 정책결정권자의 나이가 1984년생(만 37세)으로 본인과 동세대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저자의 생각으로는 본인과 연배가 비슷한 북쪽 최고 정책결정권자는 좋든 싫든 동시대를 살아가야 할 동세대였고 남과 북이 대치해야 하는 현재의 모습을 평생 볼 수는 없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고 합니다. 그 고민의 결과로 변화발전을 바라는 북쪽에게 각 분야의 세계적 롤 모델을 제시해 주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당장 우리 기준에 맞춰’가 아니라 북쪽이 한 걸음씩 발을 내밀 수 있도록 여러 상상력의 공간을 제시해 보자는 취지라는 것이죠.

그래서 제시한 분야와 나라가 환경의 스위스, 기술의 이스라엘, 정치의 싱가포르 모델이었습니다. 환경을 이용해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고 각종 국제기구들을 유치한 스위스, 군수공업을 민수로 전환해 경제적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실상 유일정당으로 권위주의 정치제제임에도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이 돼 있는 싱가포르. 이들을 각각의 모델로 제시하고 이런 모습으로 변화해 보라고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세대에 익숙한 “너희는 틀렸어. 나를 따라와”가 아니라 “너희가 그렇다면 이런 방식은 어떠니”라는 접근법이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같이 살아야 하는 가족들에게서 보이는 모습이 전자보다는 후자의 모습일 텐데 어찌 보면 우리는 그동안 전자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반성도 해보게 됐습니다. 북쪽에 제시해 주어야 할 모델의 분야가 참 다양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종교’도 그중의 하나가 아닐까라는 고민에 이르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모델의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하는 종교 교리가 세상의 다양한 모습과 변화에 쉽사리 흔들려야 할 부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의 중요한 가치에 대해 공론의 과정을 거쳐 흐름을 변화시켜 나갔던 우리 신앙의 모습들도 떠올랐습니다.

북쪽에 제시할 모델을 생각하다 보니 사제의 부재로 인해 교우촌 신자 상당수가 정상적인 신앙 활동이 어려웠던 우리 초대 교회의 모습은 어느 선까지 허용될 수 있었던 것일까라는 부분에서부터 교황청의 허락 없이 주교를 임명하는 중국 정부와도 끊임없이 대화를 하시는 교황님의 모습까지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우리 모두 ‘종교’ 분야에서 북쪽에 제시할 모델을 함께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