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고귀한 사랑, 새 생명에 잇기 위해 힘껏 달립니다” 적출된 장기 밀봉하고 수혜자에 전달 허혈 시간 내 이송 위해 연신 땀방울 유가족 면담과 장기기증 상담 업무 항상 어렵지만 생명 위한 일에 보람
‘죽음과 생명을 잇는 생명의 전달자.’ 장기이식 코디네이터의 역할에 관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장기이식 관련 모든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 간호사인 이들은 뇌사자 발굴부터 유가족 면담, 장기 이송, 수혜자 면담·돌봄까지 한 생명이 세상을 떠나며 남긴 장기를 이식이 필요한 이에게 전달해 생명을 구하고 있다.
1년 중 단 하루만이라도 장기기증·이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지정된 9월 9일 ‘장기기증의 날’을 맞아, 장기이식 코디네이터가 보내는 하루를 소개한다. 주인공은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김수환 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의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이진선(레지나·54)씨다. ■ 기도로 시작하는 장기 적출 수술 “누군가의 사랑이었고, 누군가의 그리움인 OOO님께서 오늘 이 땅에 사랑의 꽃씨를 뿌리고 떠나십니다. 고인이 주신 나눔의 사랑이 더욱 널리 퍼지게 해 주시고, 가시는 길에 평안과 안식이 있으시길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수술실 안, 추모사를 바치면 수술이 시작된다. 고개를 숙이고 묵상하던 모든 의료진은 ‘타임아웃’(time-out)제에 따라 모든 걸 멈추고 환자 정보를 확인한다. ‘환자 이름과 등록 번호….’ 확인이 끝나면 의사는 이윽고 메스를 든다. 고인의 정보를 인식하며 나는 그분이 남기신 소중한 장기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적출된 장기가 손상되지 않고 옮겨질 수 있도록 관련 용액 등을 준비하고, 다른 의료진이 시간에 맞춰 장기이식 대기자 수술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진행 상황을 보고한다. 적출 수술을 마친 의사가 장기를 안전하게 포장해 건네주면 나는 아이스박스에 밀봉하기 전 표식 종이에 관련 정보를 쓴다. 기증자 이름과 장기 명칭, 그리고 이송 책임자인 내 이름 ‘이진선.’ ■ 허혈 시간 내 장기, 수술실에 전달 밀봉된 장기를 수술실 밖으로 들고 나오면서 달리기는 시작된다. 장거리 마라톤을 완주하듯 ‘허혈 시간’(장기에 혈류가 통하지 않을 때부터 수혜자의 몸에서 다시 관류되기 전까지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장기기증자가 있는 적출 의료 기관에서부터 이식 대기자가 기다리고 있는 본원 수술실까지 쉬지 않고 달린다. 장기를 이송할 때 주로 앰뷸런스나 KTX, 비행기, 헬기 등을 이용하는데, 2019년 5월 15일 그날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본원 첫 심장 이식 수혜가 결정된 날이었는데, 20대 초반 여성에게 이식될 심장이었다. 심장은 허혈 시간이 최대 4시간에 불과해 장기들 가운데에서도 빠르고 안전한 이송이 필수였다. 하지만 앰뷸런스로 이동하는 시간이 평일 오후 퇴근 시간대와 겹쳐 심각한 교통 체증에 갇혀 버렸다. 결국 앰뷸런스는 교통 경찰관 지휘 아래 인도로 운행했다. 나는 흔들리는 앰뷸런스 안에서 온몸으로 장기 이송 박스를 부여잡고 왔다. 병원에 도착해 4층 수술실까지 달려 장기를 전달할 때까지 내겐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잘 도착해야겠다, 정말 안전하게 빨리 전달해야겠다.’ ■ 유가족 만나는 일 가장 힘들어 긴박한 달리기를 끝내면 수술실로 들어가 장기가 잘 전달됐는지 다시 확인하고 나와 관련 행정 절차를 마친다. 그런 후 또다시 뇌사자 발굴과 유가족 면담 등에 들어간다. 모든 업무가 생명과 연관돼 있어 조심스럽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부분은 뇌사자 가족분들과 만나서 진행해야 하는 장기기증 상담이다. 갑작스러운 사고와 질환으로 불과 몇 시간, 며칠 전까지만 해도 건강했던 가족의 장기기증을 결정하는 일이 어떻게 쉬울 수 있을까.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아직 환자가 뇌사 상태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가족들에게 뇌사가 무엇인지, 그 조사·판정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설명하고, 장기기증을 결정하겠는지 묻는 일은 늘 어렵기만 하다. 그럼에도 공감을 표하며 항상 “최종 결정은 가족분들이 하시지만, 마지막 가시는 길에 고귀하고 숭고한 생명 나눔의 방법이 장기기증입니다”라고 말씀드린다. 그러면 보통의 대답은 “생각해 볼게요”다. 그 자리에서 결정하는 분들은 사실 많지 않다. 배우자와 아들 하나, 딸 둘이 있는 나 역시 누구보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기에 가족을 떠나보내는 모습을 보는 순간은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5년차인 지금도 언제나 마음이 아프다.정리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