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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신앙의 전수자로서 조부모 역할 / 김민수 신부

김민수 신부(서울 청담동본당 주임)
입력일 2021-08-24 수정일 2021-08-24 발행일 2021-08-29 제 3259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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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넷째 주일은 ‘제1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로 미사가 봉헌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노인들이 홀로 세상을 떠나고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교회가 함께해야 한다며 이날의 제정 의미를 밝혔다. 코로나로 고통받는 노인조차 지나치지 않고 껴안으려는 교황의 자비로운 마음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육체적, 정신적 상실을 겪어내는 노인의 현실에만 천착하지 않고 노인만이 젊은 세대에게 줄 수 있는 세 가지 유산이 바로 꿈과 기억과 기도임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서, ‘노인들이 꾸는 지혜로운 꿈’, ‘풍부한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기억’ 그리고 ‘마음을 다 하는 노인들의 기도’를 뜻한다. 이 유산들이 자칫 흔들리거나 어려움에 빠질 수 있는 젊은 세대에게 삶의 터전이 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기초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교황 담화문은 노인은 젊은이들의 동반자로서 신앙의 전파자가 되어야 함을 제시했다.

이번 교황 담화문은 노인을 교회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매우 일상적이고 실질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노인’이라는 담론에 머물지 않고 ‘조부모’ 역할이라는 프레임으로 구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꿈과 기억과 기도를 통해 손자, 손녀에게 신앙의 전통을 전하는 역할이다. 이에 해당하는 모델이 바로 사도 바오로의 영적 아들인 티모테오다. 그는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에우니케에게 어릴 때부터 그분들의 신앙을 전수받았고(티모2서 1,5), 바오로 사도에게 신앙의 유산을 이어받으면서 에페소교회의 주교로 순교한 분이다. 티모테오 주교가 모범적인 신앙인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할머니와 어머니라는 천주교 집안과 사도 바오로라는 스승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특별히 할머니와 같은 조부모가 손자, 손녀가 신앙인으로 성장하고 자라는데 시대를 불문하고 매우 큰 영향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조부모가 손주들에게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를 알려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이를 교육시키는데 세 가지 환상의 트리플 조합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바로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라고 한다. 할아버지의 재력이 손주들 교육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하나 더 추가되었다고 한다. 바로 ‘외할머니의 체력’이 그것이다. 양가 가족이 자녀 교육과 사회적 성공을 위해 총동원될 정도로 관심과 기대가 높다. 결혼 포기와 저출산으로 점점 인구절벽이 되어가는 우리나라에서 아이가 태어난다는 자체가 축복이고, 그래서 아이를 향한 관심과 기대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아이에 대한 신앙교육은 어떠할까? 수능 교육에 대한 열의는 대단한 반면, 신앙교육은 성가정이라는 곳에서조차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다. 물론 좋은 대학, 좋은 기업에 들어가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참된 인간으로 사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인간의 완성은 지성과 인성뿐만 아니라 영성의 풍요로움도 필요하다.

조부모들은 교황 담화문을 되새기면서 손자, 손녀에게 신앙의 유산을 전수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겠다. 갓 태어난 아기들, 유아, 영아, 그리고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 조부모가 가정에서 신앙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부활시기, 성탄시기 등 전례 달력에 따라 집안의 분위기를 만들어보는 것도 중요하다. 전례와 관련된 의식들을 집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식사 전과 후 기도, 주님의 기도, 성경 읽는 것, 늘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 등등 이런 모든 신앙행위들이 가정에서 이루어질 때 어린 아이들, 청소년들은 보고 배우며 자연스럽게 따라 하기 마련이다. 특히 요즘 맞벌이 부모를 대신하는 조부모의 손자, 손녀 사랑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끝이 없을 것이다. 손주들을 양육하는 기쁨에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의 행복 이면에는 골병이 들 정도로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 힘든 점도 감내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도 조부모의 꿈과 기억과 기도를 통해 신앙의 대물림이 이루어진다면 손주들은 소중한 하느님의 자녀로 성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루카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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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신부(서울 청담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