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96) 원래 있어야 할 그 자리 찾기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1-08-10 수정일 2021-08-10 발행일 2021-08-15 제 3257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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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갑순교성지 사무실 밖 외곽에는 수국 나무가 몇 그루 있습니다. 봄이 되어 성지 내 꽃나무들이 꽃을 피울 때에도 수국은 그저 평범했지만, 6월이 되자 보라색, 흰색, 붉은색 등 형형색색 꽃을 피웠습니다. 하지만 수국은 무성한 잡초가 있는 구석진 곳에 자리해 쉽게 눈길이 가지 않았고, 그렇다고 옮겨 심을 자리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성지 사무실에 노크를 했습니다. 문을 열었더니 순례를 오신 분이 대뜸 말했습니다.

“저기 외진 곳에 핀 수국이 너무 예쁜데, 혹시 좀 가져갈 수 있을까요?”

나는 속으로, ‘세상에, 이런 가난한 성지에서 뭔가를 가져갈 생각을 하는 분이 있다니!’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안 된다’고 정중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이 가신 후, 수국이 핀 구석진 자리에 가서 꽃들을 유심히 봤더니, 공기 좋고 흙 좋은 곳이라 꽃의 색깔도 너무나 예뻤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퇴직 후 ‘정원 가꾸기’ 공부를 하는 부부가 성지 미사에 왔습니다. 그 부부에게 인사를 나누며 물었습니다.

“성지 사무실 뒤편 외진 곳에 핀 수국을 옮겨 심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그러자 그 부부는 동시에 말했습니다.

“그럼요, 잘 준비해서 옮겨 심으면 되죠.”

“그런데 주변을 보시면 알겠지만, 옮겨 심을 때가 마땅치 않아서.”

“저희가 눈여겨 본 곳이 있어요. 예전에 성지 조경 공사 하실 때, 복자 최여겸 설명문 앞에 잔디를 심어 놓으셨잖아요. 그런데 거기가 의외로 지대가 낮아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아서 잔디가 거의 다 썩어 가는데, 잔디를 걷어내고 그 공간을 정원으로 가꾸면 될 것 같아요.”

사실 그 자리는 조경 공사를 할 때 심혈을 기울인 곳이라 애착이 가다보니, 그곳을 다르게 바꾼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조경 공사를 하신 분들은 복자 최여겸 설명문 앞에 잔디는 잘 심었지만, 배수 상태를 확인하지 않아 물이 고여서 잔디가 누런빛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부부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선 복자 최여겸 설명문 앞에 있는 잔디는 파내야죠. 살아 있는 잔디는 경당 주변에 심으면 되고요. 그리고 트럭으로 한 차씩 실어오는 흙을 주문해서 주변을 물 흐름이 좋은 동산처럼 만들면 됩니다. 그러면서 배수로를 만든 후에 수국나무를 옮겨 심으면 되죠.”

그 다음 날부터, 그 부부와 연세 많은 형제님, 나, 그리고 함께 사는 신부님은 ‘복자 최여겸 설명문’ 앞 잔디를 파내고 그중 파릇한 것은 경당 주변에 다시 옮겨 심었습니다. 또 흙을 한 차 불러서 나무 심을 곳의 정비 작업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잡초 사이에 피어 있는 수국나무를 옮겨다 심었습니다. 그렇게 다 심고 나니, 멋진 성지 입구가 만들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매일 보던 수국이라 잡초 사이에서 피어도 옮겨 심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순례자 한 분이 하신 ‘성지에 핀 수국을 가져가고 싶다’는 말에 수국이 예쁘게 핀 것을 확인했고, 이에 외진 자리의 잡초 사이에 피어 있던 수국나무를 성지 입구로 옮겨 새로운 화단을 조성할 수 있었습니다. 수국은 마치 원래 있어야 할 곳이 바로 그 자리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어울리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충격 요법’을 하신 것 같습니다. 내가 너무나 예쁜 수국을 계속 방치하고 있었더니, 무례한(?) 듯 보이는 순례자를 통해서 ‘수국이 예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고, 그분 덕분에 결국은 수국의 본래 자리를 찾았으니! ‘하느님 창조의 뜻’은 모든 것들이 원래 있어야 할 그 자리를 찾는 것임을 묵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