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농민회 수원교구 두물머리 분회를 가다

이재훈 기자
입력일 2021-07-13 수정일 2021-07-13 발행일 2021-07-18 제 3254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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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 질서 거스르지 않으려면 ‘땅의 힘’ 지켜줘야 합니다”
인간은 자연과 공존하면서 후손에 자연 올바로 물려줘야
하느님 창조질서에 따라 생명농업 실천하는 농민들 화학비료·농약 사용 안 하고 땅 양분의 균형 유지 위해 녹비 작물 심고 순환재배
생명농업 계속되기 위해선 도농교류 확대 등 노력 필요
교회가 주축이 돼 나서야

가톨릭농민회 수원교구 두물머리 분회 최요왕씨가 7월 9일 자신의 농장에서 멜론 덩쿨을 손질하고 있다. 두물머리 분회에서는 화학비료 대신 낙엽, 녹비작물 등 자연을 활용해 토지 양분을 채운다.

“모든 공동체는 생존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풍요로운 땅에서 얻을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이 땅을 보호하고 후손들을 위하여 이 땅이 계속해서 풍요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해야 하는 의무도 있습니다.”(「찬미받으소서」67항)

“하느님께 속한 땅에 대한 책임은, 지성을 지닌 인간이 자연법과 이 세상의 피조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정교한 균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찬미받으소서」68항)

생태적 회개를 촉구한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자연의 위대함을 설명하고, 인간은 자연과 공존하고 이를 후손에 올바르게 물려줄 책임이 있다고 가르친다.

농민 주일을 맞아, 교황의 가르침과 지구의 신음에 응답하고 있는 가톨릭농민회 수원교구 두물머리 분회(회장 김현숙)를 찾았다. 두물머리 분회 농민들은 땅의 지력을 유지하며 자연에 순응하는 자연농법을 통한 생명농업을 실천해오고 있다.

■ 땅의 질서에 순응

땅의 지력을 유지시키고 자연 질서에 순응하는 자연농법. ‘땅이 양분을 잃지 않도록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땅의 지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수확하지 않더라도 일정 크기로 자라난 것을 땅에 묻으면 양분이 될 수 있는 녹비 작물을 심는다.’ ‘땅이 가진 양분이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작물을 순환재배 한다.’

이런 방식으로도 농작물이 원하는 크기로 자라날까? 실제로 양파 수확을 끝낸 밭에는 녹비 작물로 쓰일 옥수수가 심어져 있었다.

화학비료를 사용하면 토양에 양분이 될 질소질을 빠르게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과다하게 공급된 질소질이 토양을 약하게 해, 자연스레 병충해에 취약해진다. 결국 독극물인 농약을 사용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연속된다. 두물머리 분회의 자연농법은 이 모든 과정을 끊고 토지가 가진 힘에 맡긴다.

토지가 가진 지력을 유지하기 위해 택한 것이 녹비 작물과 순환재배다. 녹비 작물 재배는 농지에 유기물을 공급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토지를 아예 쉬게 한다면 토지가 가진 양분이 오히려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생태계 질서를 거스르지 않고도 토양 내 유기물 함량을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유기물이 풍부해져서 땅속에 미생물과 지렁이를 비롯한 생물들이 활동하고 토양 생태계 환경이 건강해지면 지력은 자연스럽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분회 회원들은 2년 3모작으로 당근, 무, 양파 등 다양한 작물들을 밭이나 비닐하우스에서 구역을 나눠 번갈아 키운다. 토지 영양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같은 작물을 같은 땅에 계속 심게 되면 특정 양분을 고갈시켜 땅이 가진 균형이 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물을 바꿔 심어가며 땅이 가진 양분의 균형을 맞춰오고 있다.

■ 후손에게 물려줄 땅 지켜야

2004년부터 두물머리 분회에서 생태농업 적용을 위해 노력해 온 최요왕(요한 사도·54·수원교구 양평 양수리본당)씨는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농사, 생명농업이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며 “땅의 힘으로 살아왔던 인간이 가져야 할 예의이자 도리”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두물머리 근처에서 ‘최요왕 체험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최요왕씨를 비롯한 분회 회원들은 땅과 화해하고 자연 질서에 순응하고자 항상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농업을 해오고 있다. 수확이 끝난 밭에 녹비 작물을 심는 것도 그 일환이다.

최씨는 “요즘 농업의 가장 문제는 땅이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양분을 투입한다는 것”이라며 “소화할 수 있을 정도만 양분을 주고 작물을 계속 돌려지어 땅이 가진 힘을 계속 유지시켜주는 것이 앞으로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농업 생산량이 대폭 늘어난 것은 불과 200여 년 전”이라며 “자연을 수탈하고 생태계 파괴의 역사를 이어왔던 우리가 위태해진 상황에서 같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올바른 자연농업”이라 덧붙였다.

‘봉금의 뜰’ 농장을 운영하는 김현숙(데레사) 두물머리 분회 회장도 “농업의 첫 원칙은 땅에 사는 지렁이, 미생물, 작은 생명체 하나하나에 예의를 다하는 것”이라며 “농부나 인간만의 것도 아닌,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요왕씨의 멜론밭에 대추방울토마토가 함께 심어져 있다. 두물머리 분회에서는 토지 양분을 고려해 한 밭에 한 작물만을 집중해서 키우지 않는다.

■ 생명농업 위해 교회 나서야

생명을 살리고 생태 질서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생명농업은 교회 가르침에 일치하는 ‘명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를 유지하려면 충분한 보상 또한 뒤따라야 한다. 농민들이 밭에 덮는 비닐을 사용하는 것도 농업 노동에 충분한 보상이 뒤따르지 않아, 그 보완책으로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환경을 해친다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최씨는 생명농업이 계속되기 위해서도 교회가 주축이 돼 나설 것을 요청했다. 그는 “‘우리밀 제품을 팔아줘야 한다’며 몇 포대씩 우리밀 밀가루를 가져오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선하다”며 “교회도 창조질서에 순응하는 농업을 지켜나가기 위해 도농교류 확대 등 다양한 사목활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자들에 대해서도 말을 이었다. 최씨는 “순망치한(脣亡齒寒·가까운 하나가 망하면 다른 하나도 온전하기 어렵다)이라는 말처럼,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업과 이를 소비하는 신자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소비의 형태에 따라 생산이 결정되는 농업이 아닌, 올바른 생명농업이 이어질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속적인 변화를 이루는데 필요한 생태적 회개는 공동체의 회개이기도 합니다.”(「찬미받으소서」 219항)

이재훈 기자 steelheart@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