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 칼럼] (84) 프란치스코 교황의 딜레마 / 존 알렌 주니어

존 알렌 주니어(크럭스 편집장)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
입력일 2021-06-29 수정일 2021-06-30 발행일 2021-07-04 제 3252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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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분산 강조한 교황이지만 직권으로 로마교구 재정 감사
자의교서 통한 법률 개정 등 더 적극적으로 교황 권한 행사
다방면의 개혁 추진하는 과정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이전에는 ‘교황이 된다는 것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라는 오랜 농담이 있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00차례 넘게 다양한 교회의 잘못과 죄에 대해 사과한 뒤로, 교황과 관련한 이 농담은 의미를 잃었다.

하지만 ‘내가 하는 대로가 아니라 내가 말하는 대로 하라’는 교황에 관한 격언은 여전히 그 의미가 살아 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역사상 처음으로 로마교구에 대한 재정 감사를 실시한다는 소식에 이 말이 문득 떠올랐다. 교황은 로마교구 교구장이니 신학적으로 자신이 맡고 있는 교구의 회계장부를 조사할 권한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자신이 선택한 로마대리구장(안젤로 데 도나티스 추기경)을 비롯한 교구 지도부에 맡기는 게 예의였다.

이러한 불간섭주의적 접근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표방한 주교단의 단체성(collegiality)과 분권주의의 가치에도 부합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러한 가치를 극찬하며 2015년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설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교회 권력의 건강한 분산”을 요청했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이번 조치는 교황직의 분권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우리는 교황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며 다양한 방면의 일들을 중앙에서 통제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특히 성직자 성추행 문제와 교회 재정 운영 부분에서 교황은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교황직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이다. 개혁가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과거의 절대군주처럼 권한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도 그렇다. 분권화된 교회를 표방하는 이 공의회 개최는 주교단의 단체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1950년대에 전 세계 주교나 평신도들이 새로운 공의회를 열자고 강력하게 요청한 것이 아니라, 교황청의 많은 고위 성직자들이 반대했는데도 성 요한 23세 교황이 필요성을 느껴 소집한 것이다.

역사상 처음 진행된 로마교구 재정 감사는 교황청 총감사원이 지난 4월 시작했다. 이 소식은 공식 발표되지 않았지만 이탈리아 언론 아시 프렌사(Aci Prensa)가 처음 보도했고, 이후 이탈리아 전역에 퍼졌다.

어떤 면에서 로마교구 재정 감사는 교황청 재정 감사보다 더 큰 일이다. 로마에는 330개 본당이 있고, 이들 본당 산하에는 500개가 넘는 성당이 있다. 게다가 100개가 넘는 평신도 단체가 있으며 성직자도 1000명이 넘는다. 또 로마교구에는 수많은 교회 기관이 있는데, 이 중에는 로마교구 관할인지 분명하지 않은 기관도 있다.

이번 재정 감사는 적절한 시기에 이뤄지고 있다. 로마교구의 많은 기관과 기구가 인력과 부동산, 재정 투자와 관련해 새로운 조치를 실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25년 희년과 관련된 특별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이번 재정 감사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진하고 있는 재정 개혁이 자신의 교구에서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서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교황의 의중이 담겨 있다. 이런 점에서 로마교구 재정 감사는 합법적이고도 꼭 필요한 교황권의 행사이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교황권 행사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가 과도한 규제로 묶여 있다며 법률만능주의를 거부하고 있지만, 내 기억으로는 현 교황만큼 공격적으로 새로운 법을 제정한 교황은 없다. 교황은 9년이 안 되는 재임기간 동안 27년 가까이 교황직을 수행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보다 더 많은 자의교서를 발표해 교회법을 수정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교회법 형벌조항을 대대적으로 고쳐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주교들이 가졌던 재량을 빼앗았다.

가정에 관한 두 번째 세계주교대의원회 회의가 열리기 직전인 2015년 9월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 2014년 열린 가정에 관한 첫 번째 주교시노드 중 이혼 후 사회 재혼자 영성체 허용과 관련한 토론이 있었고, 몇몇 주교들은 그 대안으로 혼인 무효 소송에 대한 개혁을 제안하기도 했다. 교황은 두 번째 주교시노드가 열리기 한 달 전, 일방적으로 혼인 무효 소송 절차를 간소화시켰다. 주교시노드 교부들이 이를 논의할 기회를 빼앗은 것이다.

결국, 좋건 나쁘건 가톨릭교회가 다른 주요 종교와 다른 점은 가톨릭교회에는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에 대한 분명한 답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항상 진실이었고, 프란치스코 교황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분권주의를 표방하는 교황이 과감하게 교황의 권한을 더욱 행사하고 있다.

존 알렌 주니어(크럭스 편집장)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