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가끔은 망가져도 좋다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입력일 2021-06-15 수정일 2021-06-15 발행일 2021-06-20 제 3250호 1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다른 사람 시선을 신경 쓰다 보면 심리적·신체적 병 얻을 가능성 높아
편하게 마음 푸는 것 건강에 도움

화를 내는 것은 양반이 할 짓이 아니라고 화가 안 나는 척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이 화를 내는 자신을 어떻게 볼까 전전긍긍하는 마음으로 초연한 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신앙인은 그런 수준 낮은 감정에 빠지지 말고 성당에서 기도를 하라거나, 혹은 주님께서 모욕을 참으셨듯이 참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말들이 틀린 말은 아니고 이런 마음도 이해가 되지만 그렇게 수준 높은 듯한 삶을 살면 생기는 것이 피부병입니다. 속풀이가 안 된 심리적인 문제가 피부병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영국 심리학자들이 관찰한 결과 서민층보다 소위 귀족층 사람들의 피부병이 더 심각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심리적·신체적 질환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영국 심리치료사인 데이비드 위크스 박사는 이런 사람들에게 “가끔은 망가져도 좋다”, “남들이 보기에 괴짜 혹은 괴벽스런 행동을 해 보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처방합니다.

“짜증을 내는 사람은 늙는다. 그러나 괴벽을 지닌 사람은 수명이 길다. 그들은 더 좋은 항체를 가지고 있으며 심리적 압박을 갖지 않기 때문에 삶을 즐기며 산다. 따라서 남이 보기에 어떤지 상관하지 말고 자기 안의 긴장을 푸는 데 집중해야 한다.”

재개발 본당 사목을 할 때 스트레스가 극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피부병이 생겼습니다. 약을 먹어도 가라앉지 않고 그러다가 위크스 박사의 글을 보고 그의 처방을 따라 하기로 했습니다.

차를 달리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치고 방에서 샌드백을 두들겨 패고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막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누가 봤으면 ‘저 사람 돌았구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요. 그런데 이렇게 거의 매일 속풀이를 했더니 어느 날 피부병이 없어졌습니다. 마음 안의 심리적 배설물들을 다 해소하고 나니 속이 편해서 회복이 된 듯합니다.

지금도 마음이 불편하면 일단 몸을 움직여서 그 자리를 피합니다. 그리고 속이 풀릴 때까지 무엇인가를 합니다. 이렇게 마음에 과부하가 걸린 것을 풀어 준 후 성당에서 마무리를 합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내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힘이 생긴 느낌이 듭니다.

간혹 성당에서 하루종일 앉아서 화를 삭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주님께서도 거북하시겠다’, ‘말 걸기가 어려우시겠다’ 싶은 마음이 듭니다. 잘못하다간 당신도 삿대질을 당할지 모르니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 웃습니다.

24시간 반듯하게 정장을 입고 살면 없던 병도 생깁니다. 혼자 있을 때는 널브러진 채, 망가진 채로 있는 것이 건강 유지 비법입니다.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