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화해와 용서의 희망 / 강주석 신부

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1-06-15 수정일 2021-06-15 발행일 2021-06-20 제 3250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한국에서 활동했던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선교사들은 자신이 바라보고 겪었던 것을 적어 아일랜드 본부로 보냈고, 그들의 활동은 선교잡지인 「더파이스트」(The Far East)를 통해 아일랜드, 영국, 미국, 호주와 뉴질랜드 등에 전해졌다. 「더파이스트」 1951년 3월호는 6·25전쟁에서 ‘선교활동’ 가운데 하나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공산주의자들로부터 고통받은 끔직한 불의에도 불구하고, 골롬반회 회원들은 ‘빨갱이들’(Reds)과 ‘빨갱이 혐의자들’(suspected Reds)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앞장섰다.”

예를 들어, 인천상륙작전과 대구 돌파로 유엔군의 진격이 이뤄지자 남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복수를 실행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피난민들이 유엔군 덕분에 집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들의 집은 불타 있거나 친지들이 살해된 경우도 있었으며, 그들은 공산주의자에게 협력한 정보원이나 반역자들을 국군이나 경찰에게 고발했다. 배신자들에 대한 처벌은 대개 성급한 처형으로 이뤄졌다.

골롬반회 신부들이 사법 행정에 관여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처벌이 ‘마녀사냥’이 돼서는 안 되며, 반드시 공정하게 집행돼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골롬반회 패트릭 오코너(Patrick O’Connor) 신부가 남한 내무부장관 조병옥에게 이에 관해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오코너 신부는 이 사안을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 의장에게 보고했다. 일부 ‘빨갱이들’과 ‘빨갱이 혐의자들’이 적절한 재판 절차 없이 처형된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다.

당시 보스턴뉴스 통신원이 작성한 이 기사는 증오가 만연한 전쟁 현장에서도 부역자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선교사들의 활동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공산 세력에 의해 가장 가혹한 희생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잡지의 글은 선교사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실천’을 위해서 ‘빨갱이’를 옹호한다는 비난까지도 감수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가톨릭교회 사회교리는 ‘전쟁과 분쟁의 참혹한 결과를 마주할 때 용서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전쟁 당사자 모두의 깊고 진실하며 용기 있는 반성’을 통해서 그 고통이 치유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교회는 이러한 용서가 길고 힘든 과정이란 점을 알지만 불가능하지 않다는 희망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517항 참조)

오는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에는 한국교회 각 교구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할 예정이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믿는 교회가 이 땅의 화해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