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정진석 추기경 장례미사 엄수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21-05-03 수정일 2021-05-04 발행일 2021-05-09 제 3244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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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길 떠나며 남긴 선물 같은 한마디 “항상 행복하세요”
세례와 첫영성체, 사제품 받은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신자들과 작별인사하고 영면
따뜻했던 생전 모습 떠올리며 그동안 주신 사랑·배려에 감사
교구 용인공원묘원 성직자묘역 김수환 추기경, 김옥균 주교 옆자리서 영원한 안식 들어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행복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많은 이들의 가슴에 감동을 남기고 하느님 곁으로 떠난 정진석 추기경. 그의 장례미사가 5월 1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되고 있다. 사진 박원희 기자

“행복이 하느님 뜻입니다”

“항상 행복하세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 그는 공식 장례 일정을 마친 5월 1일, 유아세례를 받고 첫영성체를 하고 사제품을 받았던 명동대성당을 떠났다. 장례미사가 거행된 날은 다소 쌀쌀한 봄날이었지만, 정 추기경은 많은 신자들의 배웅 속에 따뜻한 하느님 품에 안겼다.

정 추기경의 장례미사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됐다.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장례미사의 시작을 알렸다. 제대 앞에는 소박하게 삼나무로 짠 정 추기경의 관이 놓여있었다. 관 위에는 성경책 한 권만이 펼쳐져 있었다. 그의 사목표어가 담긴 코린토 1서 9장 22절 부분이었다. 관 앞에 놓인 액자 속에서는 빨간 추기경 수단을 입은 생전의 정 추기경이 활짝 웃고 있었다.

미사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한국 주교단, 사제단이 공동 집전했다. 미사에는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유가족과 수도자들, 관계자 등 성당 내부 전체 좌석의 20% 수준인 250여 명만 참례했다.

명동대성당 마당에는 새벽 일찍부터 장례미사에 참례하려는 신자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아쉽게 성당에 입장하지 못한 신자들과 일반 추모객 등 1200여 명은 온라인 생중계로 장례미사를 봉헌하며 정 추기경의 평안한 안식을 위해 함께 기도했다.

미사 중에는 정 추기경의 잘 알려지지 않은 다채로운 면모도 드러났다. 미사를 주례한 염 추기경은 강론에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가까이 지내보면 부드럽고 넓은 아량과 많은 사랑을 지니신 분”이라며 “때론 깊이 고민하지만 일단 식별하고 결정하면 밀어붙이는 박력을 가지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정 추기경님은 지난 2월 22일 병자성사를 받으신 뒤 마지막 말씀을 하시고 ‘하느님 만세!’를 외쳐 모두를 놀래켰다”며 “정 추기경님의 선종은 슬픔과 아쉬움에 그치지 않고 순명을 다 한 자녀의 사랑”이라고 밝혔다. 강론 중 염 추기경은 큰 어른을 떠나보내는 슬픔에 잠시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추모와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교황은 애도 서한에서 “정진석 추기경님의 선종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을 느꼈다”며 “기도로 함께할 것을 약속한다”고 전했다.

교황의 메시지는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가 대독했다. 슈에레브 대주교는 이날 고별식에서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의 조전도 대독했다.

이어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와 고인의 소신학교 제자 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백남용 신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정응희(로사) 수녀,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손병선 회장(아우구스티노)이 고별사를 전하며 고인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손 회장은 “선종하신 4월 27일 늦은 밤 추기경님을 태운 차가 이곳 명동대성당에 당도할 때 명동 주변에 울려 퍼진 조종이 어둠 속의 슬픔을 더 크고 깊게 느끼게 했다”며 선종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추기경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며 행복하게 살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서울대교구 총대리 손희송 주교는 감사인사에서 “정 추기경님은 항상 밤하늘에 작은 별빛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셨지만 이제 큰 별이 되셨다”며 “저희도 기쁘게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작은 별이라도 되고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정 추기경의 마지막 길, 마지막 시간을 함께해주신 모든 이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정 추기경의 묘비명에는 고인의 사목표어인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 새겨진다. 정 추기경은 교구 용인공원묘원 성직자묘역 내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고(故) 김옥균 주교 묘소 옆자리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5월 3일 오전 10시 명동대성당에서는 고인의 안식을 빌며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추모미사가 거행됐다. 미사 마지막에는 정 추기경이 2004년 명동대성당에서 강의를 마치며 제일 좋아하는 성가 463번 ‘순례자의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를 공개했다. 이어 파이프 오르간으로 이 성가가 연주 되자 미사에 참례한 많은 신자들이 눈물을 참지 못했다. 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이때도 ‘평생 행복하게 사세요’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다”고 밝혔다.

정진석 추기경은 4월 27일 오후 10시15분 서울성모병원에서 깊은 잠을 자듯 평온히 선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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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