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나를 보호해주는 분노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입력일 2021-04-20 수정일 2021-04-20 발행일 2021-04-25 제 3241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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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데도 한 마디 못하는 사람들
자기감정 억눌러 분노 근육 퇴화
혼자서 ‘아니오’ 말하는 훈련 해야

개똥도 약에 쓸 때가 있다고, 분노도 유용한 면이 있습니다. 분노는 자기보호 기능을 갖습니다.

시골 동네에 똥개 한 마리가 있습니다. 동네 아이들의 분풀이 대상입니다. 엄마에게 야단맞은 놈들이 길을 가다가 똥개들을 보면 발로 찹니다. 아무 이유 없이 말입니다. 그렇게 매일 얻어맞던 똥개 한 마리가 결심을 합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한 놈 발목을 대차게 물고 죽어야지!’

어느 날 아침 자기를 건드리는 동네 개구쟁이 발목을 힘차게 뭅니다. 아이는 울며불며 동네방네 소문을 냅니다. “그 똥개 건드리지 마세요! 성질 사나워요!” 그러면서 그 후로 건드리는 놈이 아무도 없답니다.

상담소를 찾아오는 분들 중 상당수가 신경증 환자들입니다. 싫은데도 싫다고 말 한 마디 못하는 사람들, 갖고 싶은 게 있어도 갖고 싶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 탓부터 하는 사람들, 누가 무리한 청을 해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렇게 겉으로 보기에 성인군자같이 보이는 이런 사람들은 자기감정을 억누르고 사느라 그 속이 말이 아닐 정도로 엉망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화를 낼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분노라는 감정을 사용하질 않아서 ‘분노 근육’이 퇴화해 버린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사는 사람들은 마음의 힘이 약해서 쉽사리 무너지고 힘들어합니다.

이런 분들은 어떤 훈련을 해야 하는가? 화를 내는 훈련, “아니오”라고 말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훈련해야 합니다. 그렇게 매일 훈련을 하면 조금씩 마음에 힘이 생기고 거절하는 힘과 부당한 것에 항의하는 힘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 삶이 시작되는 느낌이 생깁니다.

이런 이야기를 어떤 본당에서 했더니 항의 문자가 왔습니다. 그런 식으로 신자들을 망가뜨리지 말라고요. 그런 문자를 보낸 분들은 대개 문제가 생기면 남의 탓을 먼저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종이 아니라 사람으로 만들어 주려는 작업에 제동을 걸고 항의를 합니다. 심지어 복음을 들이대면서!

주님은 사람들을 자유인으로 살게 해 주려고 하셨는데, 어떤 사람들은 반대로 살면서 자신이 주님의 뜻대로 사는 양 합니다. 신경증 질환에 시달리는 분들은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시고 자기감정, 특히 분노감정 훈련에 집중하셔서 자기 삶의 권리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