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소 주일 르포] 노(老) 수사가 들려주는 수도자들의 일상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1-04-20 수정일 2021-04-21 발행일 2021-04-25 제 3241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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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자립 어려운 ‘가족’ 7명과 생활
응급 상황 언제 발생할지 몰라 
일상에서도 긴장 늦출 수 없어
가난한 이들과 늘 함께 하면서 
거리감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수도복 입지 않아 종종 오해도

사랑의 선교 수사회 카리스마를 설명하고 있는 이재달 수사.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라 불리는 성 데레사 수녀(이하 마더 데레사)는 교회 내외를 막론하고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성인이다. 하지만 그가 예수회 출신 이안 신부(1928~2000, 사랑의 선교 수사회 입회 후 앤드류 수사로 불림, 이하 앤드류 수사)와 함께 설립한 ‘사랑의 선교 수사회’(이하 수사회)를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나를 섬기라”는 부르심을 받고 평생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한 마더 데레사. 그의 정신이 수사회에 그대로 녹아있다.

성소 주일(4월 25일)을 맞아 올해로 수사회에 입회한 지 40년이 되는 이재달 수사(사랑의 선교 수사회 동아시아 한국관구 서울 본원 원장)를 통해 가난한 이들을 그리스도로 섬기며 살아가는 수사들의 삶을 들여다 본다.

■ 가난한 이들 속에서 현존

“가장 오래된 가족은 38년이나 됐어요!”

이재달 수사가 말하는 가족은 노숙인이다. 노숙인을 비롯해 전신마비 장애인 등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 힘든 7명의 ‘가족들’이 수사들과 함께 서울 삼선동 수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다.

“20~30년씩 같이 살다 보면 가족이나 다름없죠. 예전에는 정말 누구나 데리고 와서 쉬고 먹고 같이 생활했는데, 지금은 절차가 까다롭게 돼서 함부로 못 데리고 와요. 코로나19 이후에는 봉사자들도 못 와서 저희가 모든 부분을 다 돌봅니다.”

수사들은 기도하는 시간 빼고 가족들과 모든 일과를 함께한다. 청소부터 요리, 배식, 목욕, 치료 등은 물론 언제 응급 상황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24시간 늘 긴장 속에 산다.

일주일에 두 번은 서울역과 을지로역에 있는 노숙인들을 방문해 옷가지 등을 가져다 주면서 말동무가 되기도 한다.

조금 더 쉬운 길이 있을 법도 하지만, 이 수사의 신념은 단호하다.

“한국 공동체는 절대 큰 시설을 가지지 말고, 가족같이 작은 공동체를 유지하며 가난한 이들과 지냈으면 좋겠다는 수사회 공동창설자 앤드류 수사의 말을 늘 기억합니다. 아직까지는 그 조언을 실천하고 있죠.”

그는 “실제로 마더 데레사의 주 활동지역이었던 인도 출신 수사들도 한국으로 파견 나오면 매우 힘들어 한다”며 고충을 나눴다.

■ 하느님 섭리

아무리 좋은 뜻이 있어도 자신의 시간을 가난한 이들에게 모두 내어주면서 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수사들에게도 위기가 있기 마련이다.

이 수사는 “지원기 시절 일이 너무 힘들고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차별받는 상황도 있어 수사회를 나가기로 결심한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퇴회하기로 결심한 다음 날 수사회로 복귀하지 않고 부산 자갈치 시장을 찾았습니다. 생각 없이 걷고 있었는데 정말 고약한 냄새가 나는 노숙인이 있어서 그냥 지나쳤습니다. 어차피 나갈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갈고리로 낚아채듯이 잡아 당기더군요. 어쩔 수 없이 그 노숙인에게 다가갔습니다. 보통은 첫 마디가 욕을 하는데 그는 ‘내가 오늘 여기서 너를 기다렸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는 본인이 구걸한 돈을 가지고 저에게 막걸리를 사주기까지 했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성소 갈등이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성소가 더 굳어졌죠. 그 노숙인을 만나러 다시 갔지만, 그 이후로 다시는 만날 수 없었어요. 저에게는 하느님 섭리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네요.”

사랑의 선교 수사회 계단에 위치한 성모상과 마더 데레사 사진이 담긴 액자. 수사회와 부활의 기쁨을 나누는 엽서들도 전시돼 있다. 이재달 수사 제공

2018년 일본 도쿄에 파견된 이재달 수사가 봉사자들과 함께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줄 음식을 만들고 있다. 이재달 수사 제공

올해 성소자가 입회 하기 전 마지막 성소자였던 조 빅토리아노 수사(맨 왼쪽)가 2019년 인도에서 종신서원을 하고 있다. 이재달 수사 제공

■ 평수사의 길

수사들은 이재달 수사가 그랬던 것처럼 성소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하느님 이끄심에 성소가 더 굳어지기도 한다. 특히 가난한 이들과 늘 함께해야 하는 수사회의 삶은 더욱 신중해야 하기 때문에 양성과정도 비교적 길다.

수사로 살아갈 뜻이 있다면, 입회 전 1주일에서 1달 정도 체험 기간을 가진 후 지원기(1년 이상)를 시작한다. 수련기(2년), 유기서원기(5년), 제3수련(종신서원 전 준비기간, 1년)을 거친 후 종신서원을 발한다. 이런 양성과정을 거쳐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는 수사들은 서울 본원과 부산 공동체를 합쳐서 총 15명이다. 적은 회원 수를 보면 얼마나 쉽지 않은 길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올해는 좋은 소식이 있다. 2009년 이후 첫 입회자가 들어온 것이다.

“한 명 한 명 너무나 소중하죠. 생활도 쉽지 않지만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기 때문에 더 많은 것들을 감내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참 기쁨을 발견한다면 더없이 행복한 삶이라 확신합니다.”

수사회 수사들은 그 흔한 수도복도 입지 않는다. 왼쪽 가슴에 수사회를 드러내는 배지만 달 뿐이다.

“어떤 수사가 본당 강의를 나간 적이 있었는데, 수도복을 입지 않아 노숙인으로 오해받은 적도 있었어요. 이처럼 수도복을 입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대우받거나 이득 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수도복을 입지 않는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이 거리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난한 이들과 같은 위치에서 살아가는 것이 저희의 성소인 것이죠.”

사랑의 선교 수사회 경당 십자가 옆에는 ‘목마르다’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 목마르다!

수사회 경당 십자가 옆에는 ‘목마르다’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수사는 “수사회 모든 성당에는 ‘목마르다’가 새겨져 있다”고 설명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채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그 목마름이 가난한 이들 안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저희가 그 목마름을 채워 줘야죠. 또 단순히 채워 주기 위함도 아닙니다. 앤드류 수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한 번이라도 예수님의 목마름을 볼 수 있다면 이미 구원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를 간과하고 물만 주는 것은 아무 소용없죠. 따라서 가난한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특별하게 여기는 사람이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이 수사는 수사회가 가야 할 사명을 분명히 했다.

“마더 데레사는 우리에게 일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속하는 사람이라고 하셨죠. 단순한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이 누군지 알 수 있는 눈을 떠야 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타성에 젖기도 하고요. 가난한 이들에게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대단한 특권이죠.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수도 성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기도와 활동을 통해 형제들과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참 행복의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문의: 검색창에 ‘사랑의 선교 수사회’ 검색(사랑의 선교 수사회 카페 주소 https://cafe.naver.com/mcbrothers)

※성소 문의: 010-2900-8425(이재달 요한 수사)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