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장지동성당 연가(牆枝洞聖堂 戀歌) 9 - 성소(聖召), 굵고 길게 / 정연혁 신부

정연혁 신부(제2대리구 장지동본당 주임)
입력일 2021-04-13 수정일 2021-04-13 발행일 2021-04-18 제 324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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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장지동본당 수호성인은 성 이광렬 요한입니다. 본당에서 가까운 경기도 광주시 경안동 출신으로 바로 우리 지역에서 사셨던 분입니다. 이 성인께서는 세 명의 첫 신학생인 김대건 안드레아와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가 마카오로 유학 가는데 큰 역할을 했던 분입니다. 제가 쓰는 표현으로는 ‘아버지가 자녀를 손잡고 이끌 듯이 같이 길을 간’ 분입니다. 우리 성인께서는 그 이전에 성 모방 신부님과 성 샤스땅 신부님 입국을 위해서도 북경까지 왕래하셨던 분입니다. 모든 본당신부의 큰 염원은 거룩한 성직자, 수도자, 성소자를 양성하는 일입니다. 마치 성 이광렬 요한과 같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거하셨던 목자의 자격 중 늘 저의 양심을 괴롭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착한 목자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목자는 양들에게 문을 열어준다.”, “목자는 양들의 목소리를 알고 양들도 목자의 목소리를 안다.”,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낸다.”, “나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이 가르침들은 제게는 늘 원자폭탄입니다. 누가 이런 목자가 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스승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또한 중국에서 프랑스 성직자를 모셔오고 신학생들을 마카오로 안내하신 우리 이광렬 요한 성인께서도 사제들에 대해 같은 바람을 가지셨기에 그토록 희생하셨을 것입니다.

저는 부임했던 본당마다 성소자를 내지 못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하리라고 믿었던 우리 청소년들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성소에 관심을 두기는커녕 성당도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본당에 초등부와 중등부 학생 9명이 예비수도자로 등록했습니다. 그러니 오히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갑자기 이 많은 학생이 성소에 관심을 둘 것이라 생각도 못 했고 저도 준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학생들에게 물으니 자신들이 무엇을 시작했는지 알고 있었고 대화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갈지 모르지만,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예비신학생들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겨울에 군고구마 기계를 ‘득템’했습니다. 요즘 고구마들은 날씬하더군요. 어느 날 평일 미사 후 군고구마를 신자분들께 나누어 드렸습니다. 그런데 저와 정신연령이 같은 초딩 녀석 하나가 고구마 꼬랑지를 잡고 물구나무 세워 저에게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신부님 똥!” 이에 저는 발끈하여 대답했습니다. “얌마, 내 껀 더 굵고 길어.” 그 후에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의 길…. 그 굵고 긴 길…. 흔들리지 않게 굵은 뿌리를 세상에 내리시고 역사를 넘어서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가시는 주님의 길…. 이 길의 뒷 언저리가 성소겠지요.

이번 성소주일에는 플래카드를 걸어볼까 싶습니다. “장지동 식구 여러분, 굵고 길게 갈 분들을 찾습니다!” 성 이광렬 요한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 고구마의 마음으로 우리 본당에 성소의 은총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정연혁 신부(제2대리구 장지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