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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친정, 엄마·아빠 그리고 아이들의 외가

김인순(세바스찬·안동교구 풍기본당)
입력일 2021-03-09 수정일 2021-03-09 발행일 2021-03-14 제 323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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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親庭)은 시집간 딸의 본가(本家)다. 거기에는 나를 낳아 길러 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딸아이들의 외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비롯해 본가의 가족들이 있다.

내가 복받은 사람인 것은 두 누님이 있다는 행운을 가졌기 때문이다. 가깝게 지내는 형제들과 비교하면 그들은 맏이어서 누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딸을 시집보낸 친정아버지 편에서 바라보면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스물 전에 본가를 떠났으니 ‘시부모 모시고 아이 낳고 잘 살아야하는데….’ 오매불망 걱정이었을 것이다. 시가로 돌아갈 적의 뒷모습을 차마 쳐다보지 못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큰 누님은 4형제를 기르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을 다녀가곤 했는데 과자와 용돈을 얻었고 살고 있던 안동과 대구에 놀러 가는 일이 많았으니 그 추억이 그립다.

작은 누나와는 4년 차다. 나는 1년 빨리, 누나는 늦게 입학했다. 누나는 보호자였고, 아들이라는 권한으로 좋은 것은 먼저 내 차지였다. 소풍이나 운동회 때에 늘 챙겨 주었으니 공자(公子)로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 누나가 스물 셋에 시집가던 날과 신혼 여행을 왔다 가던 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산으로 달려가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을 키우고 바쁘게 살다 보니 생일날이 되면 전화를 하는 일로 한 핏줄의 강한 정체성을 발견한다.

내 자녀 중에 딸아이가 두 자매의 엄마가 됐다. 그 아이가 시집가던 날은 기쁘기만 했다. 시집살이에 대한 부담이 없을 만큼 세상이 달라졌다. 오랜 역사에서 반세기도 되기 전에 자녀도 아들딸 구분이 없고 자녀를 가지면 국가로부터도 대접을 받는다. 아이 둘을 데리고 본가에 왔다가 돌아가는 딸아이의 심경을 잠시 헤아려 본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설에도 못 오고 모처럼 찾아오는 친정에 설렘이 있었을 것이고, 외가를 찾아오는 손주들의 마음은 마냥 기뻤을 것이다. 주고 또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그들은 알고 있다. 외가는 마음의 고향이다. 오랫동안 깊이 심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세월은 그냥 두지 않을 것이고 때가 되면 소중한 시간 하나를 잃어버릴 것이다. 외가에서 놀다가 돌아가는 그들을 멀거니 쳐다보다 돌아섰다. 비가 오는데 무사히 잘 가기를.

친정아버지의 마음은 그렇다. 사랑을 주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린다. 표현은 못하면서 시집간 딸에 대한 기림이 강렬할 수밖에 없다. 딸이 출가하여 책임과 고독을 지고 살아가는 마음, DNA는 그 아버지 마음에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 아이에 대한 사랑의 정확한 저울은 하느님의 모상이다. 그 가르침으로 살고 싶다. 정이 넘쳐흐르는 친정, 외가에 대한 동경은 인간 내면의 진실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이상향(理想鄕)이다.

김인순(세바스찬·안동교구 풍기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