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빛나는 별과 동행하는 은총의 길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입력일 2020-12-28 수정일 2020-12-29 발행일 2021-01-01 제 3226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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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제1독서(이사 60,1-6) 제2독서(에페 3,2.3ㄴ.5-6) 복음(마태 2,1-12)

어둠 밝히는 구원과 생명의 빛
새로 뜬 별을 따라온 동방박사들 주님 향한 믿음의 순례길 택한 것
성령 도움으로 진리를 깨닫고 친교와 형제애로 신앙 삶 살기를

주님 공현 대축일에 성탄의 기쁨이 새롭습니다. 동방박사(Magi)들이 별의 인도로 베들레헴을 찾아와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리고 예물을 바침으로 강생의 신비가 모든 민족에게 드러납니다. 구원의 문은 열려있습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새해에는 사랑이신 임마누엘 주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기로 다짐합니다.

우리 위에 별빛이 비칩니다. 이사야 예언자(제1독서)는 거룩한 도성에 은총의 빛이 충만함을 선포합니다. 예루살렘아,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 올랐다(이사 60,1).” 구원의 빛을 향한 세상 사람들의 순례는 보편적입니다. 모든 민족이 기쁜 소식을 들으면 주님께서 이끄시는 행복한 삶의 길로 향할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제2독서)는 계시를 통해 주님의 신비를 알고 이방인들에게 사도직 사명을 수행합니다. 지금은 성령을 통해 사랑의 신비가 드러납니다. 다른 민족들도 복음을 통하여 약속의 공동상속자가 되고, 그리스도 가족의 한 몸으로 공동수혜자가 됩니다. 모든 신자가 성령 안에서 친교와 사랑의 일치를 이룹니다.

오늘 복음에 동방박사들은 주님의 별을 보고 베들레헴을 찾아와 성모 마리아와 함께 계신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고 예물을 바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참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성탄은 모든 민족에게 드러내신 구원의 은총입니다. 이스라엘은 거부하지만 다른 민족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시초입니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 솟는다’라는 신탁((민수 24,17)처럼 새로 뜬 별을 보는 것은 주님의 탄생으로 사랑의 여정이 시작되는 믿음입니다. ‘거룩한 도성’인 예루살렘에 동방박사들이 찾아온 때는 헤로데 왕 시대(기원전 37-4년)입니다.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께 경배드리러 왔다는 말에 헤로데와 온 예루살렘은 깜짝 놀랍니다. 별이 앞서가다 아기 예수님 계신 곳에 멈춘 곳은 예루살렘 남쪽 10km 정도 떨어진 베들레헴입니다. 다윗의 출생지인 베들레헴은 일명 ‘빵의 성전’으로 불립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베들레헴 첫 크리스마스 때 강생의 신비를 묵상할 수 있게 그레치오 성당에 구유를 처음 설치(1223)했지요.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에 우리는 구유에서 이민족의 첫 방문객인 동방박사들을 봅니다. 한 처음에 말씀이 사람이 되신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고 연약한 우리의 인성에 사랑이신 주님의 신성을 함양합니다.

산드로 보티첼리 ‘동방박사의 경배’

별빛을 따라 순례한 동방박사들의 여정은 방랑의 길이 아닙니다. 그들이 자유의지로 선택한 여행목표는 분명합니다. 영혼의 생명이신 주님을 향한 믿음의 순례길입니다. 빛나는 별을 보고 팔레스타인 산악지대에 있는 예루살렘을 찾아옵니다. 일기가 불순하거나 구름이 짙을 때는 잠시 쉬어 생기를 돋우고, 장애물을 만나면 좁은 길을 택했겠지요. 우리의 삶의 길도 나 중심이 아닌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합니다.

주님께 땅에 엎드려 경배한 동방박사들은 값진 예물(황금, 유향, 몰약)을 드립니다. 영성독서회에서 성서에 ‘가장 아름다운 노래’인 아가를 묵상한 바 있습니다. 사랑의 상징물 중에 순금과 향유와 몰약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순금은 왕이신 주님께 대한 사랑의 표지이고, 향료는 주님 사랑을 갈망하는 영혼의 향기이며, 몰약은 죽음을 이기는 사랑의 힘입니다. 아가는 사랑의 빛, 그리스도의 향기, 사랑의 일치를 찬미합니다.

사랑의 신비를 드러내신 주님께 우리는 무슨 예물을 드려야 할까요? 아가는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불길임을 노래합니다. 아가가 인간의 사랑 이야기라면 어찌 정경으로 채택되었겠습니까? 창조의 신성과 주님의 지혜는 물론 조건 없는 사랑은 영원합니다. “먹어라, 벗들아. 마셔라, 사랑에 취하여라(아가 5,1).” 우리는 미사성제에서 사랑이신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시고, 부르심에 ‘예’라고 응답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빛이십니다. 빛 속을 걷는 우리는 세상 속에서도 하늘나라의 삶을 맛보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살아갑니다. 빛나는 별과 함께하는 길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진리를 깨닫고 친교와 형제애로 살아가는 신앙의 여정입니다.

지난날 잦은 해외여행과 산행을 한 경험에 따르면 순례길의 배낭은 가벼울수록 좋습니다.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하려면 많은 것을 포기하거나 나누고, 낡은 습관은 털어버리며, 마음을 무겁게 한 사람과 화해하고, 풀리지 않는 매듭은 성모님께 의탁합니다. 코로나 19 감염 위기로 가난한 이들이 큰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길은 자신을 버린 가난한 마음으로 따르는 사랑의 길입니다.

동방에서 출발해 ‘빵의 성전’인 예루살렘을 향한 동방박사의 순례길을 인도한 별은 참빛이십니다. 이 별은 이 땅에 어둠을 밝히는 구원의 빛이고, 하느님을 아는 신앙의 여정을 밝히는 ‘생명의 빛’이십니다. 새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인 동시에 ‘성 요셉의 해’입니다. 주님의 현존을 믿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갈망하며, ‘세상의 빛’이신 주님을 따라 그리스도인답게 사랑의 삶을 살게 해 주소서. 아멘.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