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66) 미소는 하느님의 사랑 방망이!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0-12-28 수정일 2020-12-29 발행일 2021-01-01 제 3226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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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어느 수녀회의 피양성자들, 즉 수녀원에 입회한 지 1년·2년 차 되는 예비 수녀님들의 개갑장터순교성지 방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지 담당을 맡고 있는 나는 아침에 공소 미사를 봉헌한 후 성지에 일찍 출근해서 순례 오시는 수녀님들을 기다렸습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25인승 차량이 도착하더니, 무려 열여섯 분의 예비 수녀님들이 내리셨습니다. 얼굴에는 방역 지침에 따라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있었지만, 그 너머로 드러나는 앳된 표정의 순수하고 맑은 모습,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흐뭇해지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암튼 예비 수녀님들 앞에서 성지에 대해 내가 아는 것, 모든 것을 다 쥐어 짜내서 성지 안내를 해드렸습니다. 어리바리한 나의 성지 안내였지만, 예비 수녀님들은 진지하고 기쁜 마음으로 다 알아들었다는 듯 그렇게 연신 고개를 끄덕여주면서 해맑은 웃음을 나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약간 쌀쌀한 겨울의 아침 시간이었지만, 예비 수녀님들이 주신 귀한 웃음 선물로 인해 내 마음도 무척 따스해졌습니다.

수녀님들은 순례를 한 후 곧바로 떠났고 나는 성지에서 점심을 먹은 후, 오후에 공소로 돌아왔습니다. 공소 마당에 차를 주차해 놓고 수도원으로 들어가려는데, 수도원 옆 큰 텃밭을 가꾸시던 할머니께서 배추 네 포기를 가슴에 안은 채 걸어오셨습니다. 순간 예비 수녀님들이 선물로 주신 따스한 웃음이 내 마음속에 남아 있어서 그랬는지, 할머니를 보자 나 또한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드렸습니다.

“할머니, 밭일 마치고 이제 집에 가시는 길이셔요?”

나의 웃는 얼굴을 보자 할머니는

“허허, 웃으니 좋네. 뭔 좋은 일이라도 있는갑다. 아, 이거 하나 갖다 쌈 싸서 잡숴 봐. 방금 밭에서 캤응께. 그라고 저짝, 밭에 있는 배추랑 파, 먹을라면 뽑아 먹어 잉.”

“에고, 할머니, 감사합니다. 배추 잘 먹을게요.”

할머니께 그저 환한 미소로 인사를 드린 것뿐인데, 할머니께선 다 늙은 ‘총각’이 귀엽게 인사를 하니 어쩔 줄 몰라하시며 당신이 가지고 있던 배추까지 나에게 주셨습니다.

“어르신, 잘 먹을게요잉!”

그러자 할머니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시더니, ‘피식 -’ 웃음. 그리고 당신 집으로 가셨습니다. 나는 배추 한 포기를 가지고 사제관에 들어왔고, 식탁에 앉아 배추를 보며 ‘이걸 어떻게 먹을까’ 잠시 고민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토요일 저녁까지 식사 당번이기 때문입니다. 순간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 배춧국을 끓여보자. 배춧속은 된장에 쌈을 싸 먹고!’

이내 쌀을 씻은 후, 쌀뜨물을 받아 놓았습니다. 그런 다음 방에 가서 소소한 일을 한 후 본격적으로 식사 준비를 했습니다. 쌀뜨물을 국 냄비에 부은 다음 밥통에 밥을 안쳤습니다. 그리고 싱싱한 배추를 잘 씻은 다음 큰 배춧잎은 먹기 좋게 썰었고, 무 반 개를 자른 다음 양파 한 개랑 마늘도 다졌습니다. 냄비에서 쌀뜨물이 끓어오르자 무를 먼저 넣고 그다음 고추장 한 숟갈, 된장 한 숟갈 반을 풀었습니다. 그런 다음 식사 전에 배추랑 양파, 마늘을 넣고 한 번 더 푹 끓였고 마지막으로 간을 했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자, 함께 사는 형제들이 식당에 왔습니다. 우리는 식탁에 앉아 뜨거운 밥과 웃음이 가득 든 배춧국으로 식사를 하는데 ‘ㅎㅎ’ 정말이지, 내 어깨가 으쓱할 정도로 행복한 식사 시간이 됐습니다.

아침에 성지를 방문하신 수녀님들이 성지 안내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주신 미소가 ‘배추’로 변했고, 이 배추는 형제애라는 큰 행복을 불러왔습니다. 미소, 정말이지 이 녀석은 우리 삶에 무슨 일을 일으킬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하느님의 도깨비방망이, 아님 사랑 방망이인 듯 합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