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무언의 위엄성 / 강영순

강영순(소화데레사) 수필가
입력일 2020-12-28 수정일 2020-12-29 발행일 2021-01-01 제 3226호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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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발트색 겨울 하늘은 해맑고 시원하여 기분이 상쾌하다. 새 밑부터 몰아 친 한파는 연이어 기승을 떨치고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해돋이는 희망찬 새해의 여명을 이룩하고 있는데 엄동설한의 겨울 날씨는 이젠 삼한사온도 까맣게 잊혀가고 성긴 눈발만 희끗희끗 휘날리고 있다. 얼어붙은 빙판 길 위를 송신하며 행인들의 발걸음은 느슨 느슨히 걷기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좁다란 골목 어귀마다 아이들은 눈 싸움질에 푹 빠져 끊임없이 신명나게 노닐고 있다.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광경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느 틈에 내 어린 나이 때 싸인 옛 추억들로 아름다운 깊은 사념에 잠겨 진다. 넓적한 나무판으로 스키 만들어 언덕길 언덕바지를 지상 최고의 스키장으로 마냥 믿고 미끄럼 타기에 눈코 뜰 사이 없이 동분서주하는 스키선수로 등장하고 있다. 펑펑 쏟아지는 함박 눈송이 헤치며 눈 뭉치로 야구공 만들어 야구시합에 열중하는 즐거운 비명소리가 마치 폭죽 불꽃 터뜨리는 소리와 하나도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내 나이테 까마득 모르쇠하고 시새움에 못 이겨 눈밭으로 쏜살 같이 달려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 몰랐다.

설한 속에서 겨울나기란 어른들 세계의 곤욕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더군다나 겨울 눈 꽃은 별로 달갑지 않는 불청객이다.

아침 출근길 그 많은 차량들은 이중 삼중으로 충돌하기 일쑤이고 빙판 길 위에서 낙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기상 이변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자연 질서의 순리가 혼란해지고, 많은 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기상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동장군의 얼음 커튼 두려움에 날렵히 신경을 계속 기울이고 있다

어느덧 저뭇한 해거름은 서슴없이 검붉은 석양의 노을이 마구 타들어가고 있다. 앞 베란다 작은 화단엔 하얀, 핑크빛, 빨간색 머금은 동백꽃 망우리 끝자락마다 핑크빛 매니큐어를 곱게 칠한 손톱을 살짝 튀기고 있다.

맨 먼저 분홍빛 꽃이 달덩이처럼 피어나고 순서대로 새침한 흰색, 빨간 꽃송이 활짝 피어오르고 있다. 참으로 기이한 동백나무이다. 흰 꽃 피어난 가지 줄기에 빨간 동백꽃 한 송이가 피어 기특한 장관을 이룩하여 귀염성 있고 신통한 일이 나타난 것이다.

말쑥한 차림의 매끈한 매무새 갖춘 식물체는 질서 정연할 뿐 아니라 진솔하고 굳건한 모습으로 인간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다.

만물은 자연 이치대로 순응하고 있다.

웃음잃은 모든 환자에게 환한 웃음 짓도록 꽃송이 한 아름씩 품안에 안겨 준다면 빙그레한 미소와 밝은 얼굴빛이 언제나 상량해질 것이다.

꽃 한 송이가 아픔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들로 하여금 최상의 특효약으로 효험이 있어 날로 좋아질 것임을 마음의 경험이 알려주고 있다.

울적한 기분일 때 동백꽃이 나를 한사코 달래 주고 있음과 마찬가지이다.

동백꽃 무리들과 나는 이따금 무언극을 벌려 이야기 나눌 때가 있다.

“너희는 어쩌면 그렇게도 예쁘장스럽니….”

입속말을 넌지시 건네며 중얼 거린다. 나에게 둘도 없는 친우처럼 여러 꽃잎들을 손으로 매만지며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애원하듯 부러워하는 마음이 간절하여진다.

생기있고 활기찬 그들의 생명력은 냉혹한 겨울 날씨에 차츰 서광을 드리운다.

위풍당당하고 꾸준히 할 일 다 하는 식물들의 위엄성이 시끌벅적한 인간들에게 영원토록 본보기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강영순(소화데레사)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