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세상의 모든 가장들, 힘냅시다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
입력일 2020-12-21 수정일 2020-12-27 발행일 2020-12-25 제 3225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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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제1독서(집회 3,2-6.12-14) 제2독서(콜로 3,12-21) 복음(루카 2,22-40)

제대로 된 제물 바치지 못한 요셉 성인, 힘든 가장의 모습 보는 듯
그러나 화려한 것으로 치장하는 것은 신앙의 삶과 거리 멀어
성가정 조건은 풍족함이 아니라 하느님과 대화하며 친해지는 것

한 해를 마감하는 주일에 교회는 하늘 아래 가장 향기로운 곳, 성가정을 기리며 온 세상을 축복합니다. 그럼에도 지난 한 해를 추억하는 우리의 마음은 그리 밝지가 않은데요. 지난해의 삶들이 결코 예사롭지도 평범치도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온 세상이 참으로 독특하고 생소한 날들을 경험해야 했으니까요.

때문에 저는 지금 이 글을 통해서 이 세상에 평화를 선물하시는 주님 사랑이 오롯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성가정의 축복을 고스란히 전달하여 모든 이들의 삶에 생기가 되살아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믿음인의 찬미와 감사는 편치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래서 더욱, 아무런 조건 없이 마냥 기뻐하며 감사드리는 것이 마땅하기에 그렇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오직 아기 예수님을 뵙고 사랑해 드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무조건 기뻐하시길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으니 말입니다. 우리 삶을 스산케 하는 모든 어둠은 빛이신 주님을 결코 이길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성경은 성가정의 가정사를 세세히 들려주지 않지만 오늘 복음 이야기는 그분들의 삶이 결코 특별한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의 아들을 키운 남자, 요셉 성인의 심정이 마음에 담기는데요. 그날 요셉 성인이 봉헌한 예물, 비둘기 두 마리는 양 한 마리를 바칠 여력이 없는 가난한 이를 위한 예외 조항이었다는 사실이 괜스레 아프게 다가오는 겁니다(레위 11,8 참조).

두초 디 부오닌세냐 ‘성전에 바침’ (부분)

하느님께서는 산모의 정결례를 위한 예식에서 번제물로 어린양 한 마리를 바치고 속죄 제물로 집비둘기와 산비둘기를 바칠 것을 명하셨는데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예물을 마련했던 걸 보면 성가정의 살림살이가 결코 풍족하지도 여유롭지도 않았다는 걸 알려주니까요.

오늘도 교회는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한 약혼녀 마리아를 배려했던 요셉 성인의 성정과 됨됨이를 깊이 추앙하며 기립니다. 하지만 그날,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하느님께 바칠 제물로 일 년 된 어린 양을 마련할 수 없었던 가장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옹색하게 작은 새 두 마리를 준비하면서 그 마음이 어땠을까요? 마음속 그득, 못난 가장의 미안함이 쌓이지는 않았을까요? 문득 아내를 마구간에서 몸을 풀게 했던 일도, 아기 예수님을 추위에 떨게 했던 것도 다 자신이 못난 탓이라 싶지는 않았을까요? 스스로 기가 죽어서 말도 조심조심히, 눈길도 조심조심히 성모님과 예수님을 살피지는 않았을까요?

저는 오늘 이러한 요셉 성인의 모습에서 이즈음, 고단한 삶으로 힘에 부쳐 계신 가장들의 처진 어깨를 봅니다. 사랑하는 가족 앞에서 늘 작아지는 가장의 시린 뒷모습을 봅니다. 그날 요셉 성인의 모습이야말로 홀로 모든 걸 짊어지고 감내하며 쓴 소주 한잔 들이키며 힘을 내는 우리네 아빠들의 모습이라 싶은 겁니다. ‘힘내세요’ 큰소리로 응원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늘 성가정을 이루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 그럼에도 더 크고 넓고 으리으리한 삶을 선망합니다. 이런저런 눈에 보이는 것들을 더 갖기 위해서 애를 쓰며 지냅니다. 그런데요. 만약에 성가정의 삶이 그런 세상 것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하느님께서 그것을 마련해주지 않았을 리가 없겠지요. 성가정을 꾸리기 위한 조건이 풍족하고 화려하고 대단한 것에 있었다면 그분들의 삶이 그렇게 옹색할 까닭이 없었겠지요. 그래서 저부터 반성하게 됩니다. 제 주위에 놓인 많은 것들, 방안에 겹겹이 자리한 이 허다한 것들을 부끄러워합니다. 이 잡다한 것들로 하느님과의 사이에 벽이 쳐진 것은 아닌지, 주님과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 것은 아닐지, 우려합니다. 결국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인격적인 만남을 이루지 못하고 그저 지켜보고 구경하는 처지로 추락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염려합니다. 성경 말씀마저 지식으로 간직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마음이 철렁합니다. 이는 하느님을 믿는 신앙의 삶이 아니니 말입니다. 하느님을 제대로 만나는 모습일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성가정은 매일 매일 시간 시간마다 마음을 쏟아붓는 기도가 살아있는 곳입니다. 하느님 앞에 정직하고 하느님께만 집중하는 기도의 골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평화가 지배하는 곳입니다. 때문에 마구간처럼 초라해도 상관없습니다. 작은 새 두 마리밖에 마련할 수 없는 처지라 해도 문제없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그분께 마음의 지성소를 내어드리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수시로 주님과 대화하며 그분과 친해지는 것이 가장 소중합니다. 이것이 성가정의 첫걸음임이며 성가정을 꾸리는 제일의 비결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디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하느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무한 긍정의 존재로 살아갑시다. 세상의 세파가 제아무리 험할지라도 주님께서 주신 참 평화를 잃지 않는 하늘 가정의 가족이 되어봅시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감하는 주일, 주님의 평화 덕분에 “영혼이 꿰찔리는”아픔마저 튼튼한 믿음과 탄탄한 희망의 근거로 삼는 참 지혜의 소유자가 되시길, 마음 모아 축원합니다.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