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오실 분이 당신입니까?

임숙희(레지나) 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0-12-21 수정일 2020-12-27 발행일 2020-12-25 제 3225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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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제1독서(이사 9,1-6) 제2독서(티토 2,11-14) 복음(루카 2,1-14)
하느님 그 자체로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탄생은 
어떤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는 주님의 은총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의롭고 경건한 삶 살아야

“오늘 우리 구원자 주 그리스도 태어나셨다.”(화답송)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팬데믹으로 성탄 전례에 참석할 수 없어 가난하고 소박한 성탄을 맞습니다. 2000년 전 성모님과 요셉이 정치적, 사회적 상황 때문에 낯선 곳에서 예수님을 낳아야 했듯 아주 ‘특별한’ 성탄을 보냅니다. 온 세상이 어둠 속을 걸어가고 있는 오늘 밤, 고요하고 거룩한 이 밤, 성탄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성탄 전례 말씀을 경청합니다. 포대기에 싸인 아기의 평화로운 미소는 인간의 죄와 오만에 대해 한 번도 실망해 본 적이 없는 하느님의 미소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끝이 없는 평화를 선물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기를!”

■ 복음의 맥락

오늘 말씀은 모두 성탄의 빛에 비춰 묵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탄생은 한 해,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삶, 번영과 평화 시대의 시작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루카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님 탄생이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이며 참된 평화를 가져다 준다”고 말합니다. 제1독서와 제2독서에서도 태어난 아기가 어떤 분인지, 그분 탄생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가르칩니다.

■ 포대기에 싸여서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루카복음서는 우리를 ‘포대기에 싸여서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에게 데려갑니다. 포대기는 이불 또는 기저귀 천에 해당합니다. 해산을 앞둔 어머니인 성모님이 여행 준비를 하면서 가장 소중하게 챙긴 것이 태어날 아기의 기저귀였을 것입니다.

세상 어머니들이 자기 아기에게 줄 생애 첫 선물은 기저귀가 아닙니까? 이 아기는 마리아의 ‘첫아들’(프로토토코스)입니다. 루카가 복음서를 쓰던 시기(기원후 85년)에 ‘첫아들’(또는 맏아들)은 만물에 앞서 태어난 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최초로 살아나고 창조계의 으뜸으로서 그리스도의 우주적 역할을 이해하는 표현이었습니다.(콜로 1,15-16; 묵시 1,4-5)

‘구유’는 가축이 먹을 음식을 놓는 ‘여물통’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위한 양식입니다. 그래서 구유에 놓입니다. 그분은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빵이기 때문입니다. 루카는 이런 여러 가지 표현을 통해 예수님이 하느님의 유일한 아들임을 확고하게 믿으면서 예수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느님이야말로 예수님 아버지입니다.

■ 평화의 군왕, 용맹한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파악하는 데 이사야서는 중요한 배경을 제공합니다. 이사야는 기원전 8세기에 ‘테러’의 대명사인 아시리아의 침략으로 공포에 떨고 있는 유다 백성에게 다윗 가문에서 탄생할 한 아기, 이스라엘의 참된 상속자(아하즈 임금의 아들 히즈키야)가 아시리아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치고 평화를 가져오리라고 선포합니다. “왕권이 그의 어깨 위에 놓이고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사 9,5)으로 불릴 것입니다. 백성의 운명을 바꿀 경이로운 한 아이에 대한 이사야의 옛말은 예수님을 통해 성취됩니다.

교회 교부들은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라는 이미지가 어깨에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향해 갈바리로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예시한다고 해석합니다. 예수님의 왕권은 세상의 왕권처럼 권력이 아니라 십자가의 자기 비움을 통해 이뤄집니다. ‘용맹한 하느님’이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 하느님의 아들만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 자체’이심을 보여 줍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주셨다.”(요한 1,18)

지거 쾨더 ‘그레초 마을의 성탄’ (부분)

■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은총

제2독서에서 바오로는 크레타섬의 감독, 이교에서 개종한 협력자 티토에게 희망이 가득 찬 말로 예수님 오심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티토 2,11)

성탄의 가장 진정한 메시지는 성, 나라, 빈부, 신분 등 어떤 종류의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과 새로운 삶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보편성은 성탄의 본질적인 차원입니다.

“팬데믹 같은 세계적 비극이 한 사람의 문제가 모든 사람의 문제가 되는 한 배에 탄 세계 공동체라는 감각을 순간적으로 되살려 놓았습니다. 그곳에서 한 사람의 악은 모두에게 해를 끼칩니다. 우리는 아무도 혼자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모든 형제들」 32항)

예수님의 구원은 믿는 이들에게 회심, 새로운 삶에 대한 결단과 행동을 요구합니다. 바오로는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폐쇄주의와 고립 안에 머물고 싶은 유혹을 벗어나서 구원을 전하는 삶을 보여 주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거저 받은 이들은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티토 2,12) 살아야 합니다.

■ 낯선 곳에서 성탄을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처음으로 ‘낯선’ 환경에서 예수님 성탄을 맞으면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을 떠올립니다. 예수님은 과거 2000년 전에 오셨고, 현재 우리 삶 안에 매일 오시며, 미래 종말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현재 매일 그분을 간절히 원하고 그분을 찾는 사람 마음 안에 오십니다. 그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선물하십니다.

성탄 준비를 풍요롭게 하는 전례와 고해성사가 없는 성탄절은 너무나 고요합니다. 그런데 이 고요한 환경이 우리가 지은 죄의 무게를 더욱 깊이 느끼게 합니다. 예수님은 정말 우리를 온갖 죄에서 해방시키는 구원자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두려움과 어둠 속에서도 2000년 전에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가 계속할 때 우리 삶 안에서 매일 새롭게 태어나십니다. 억눌린 이들에게 올바른 일을 하고, 굶주린 이들에게 빵을 주며, 붙잡힌 이들을 풀어 주고, 눈먼 이들의 눈을 열어 주며, 꺽인 이들을 일으켜 주는 일입니다.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구원자 주 그리스도 태어나셨다.”(복음 환호송)

임숙희(레지나) 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