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50) 비대면 시기에 사랑하는 방법

장정애 (마리아고레띠·마리아 사업회 회원)
입력일 2020-12-21 수정일 2020-12-22 발행일 2020-12-25 제 3225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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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닌 함께 하느님께 나아간다는 것
개인 영성은 한 사람이 그와 하느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공동 영성은 함께 하느님께 나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형제는 하느님께 이르는 길’ 이라고 할 뿐 아니라 
사랑을 실천한 경험담도 서로 나눈다 

요즘처럼 사람들이 책을 멀리하는 시절에 될 법이나 한 이야기냐고 했다. 게다가 무슨무슨 단체 이름을 내걸면 더더욱 외면하기가 십상이라고도 했다. 잔뜩 주눅이 들어 숨고 싶었다. 사실 일의 발단은 이랬다.

유통업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치매를 앓으신 어머니와 함께 지낸 이야기를 쓴 내 책을 오래전부터 자신의 회사에서 유통하고 싶어 했다. 그 친구가 왜 그랬는지를 나는 안다. 그 책을 읽은 다른 여느 사람처럼 자신도 어머니를 더 잘 사랑해 드릴 수 있었고, 치매나 노화 과정에 대한 지식들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사실을.

그런데 계속 시도했지만 아직까지도 서적 유통과는 연이 닿지를 않고, 그러다 생각해 낸 것이 자신의 기업이 사회 환원 차원으로 출판 비용을 댈 테니 인쇄를 해서 어디든 기증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몇몇 친구들과 마음을 모아 책 제목에 있는 ‘꽃길’을 따서 ‘꽃길 프로젝트’라고 이름까지 붙였다. 출판사에서도 의도를 알고는 여러 가지로 배려해 주어서 출판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문제는 기증할 곳을 찾는 일이었다. 먹거리나 일상용품이면 몰라도 책은 딱히 원하는 곳이 마땅찮다고들 했다.

나 역시 내 이름이 걸린 책을 “거저 줄게요”, “가져가세요”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게다가 내가 나서서 한다는 것은 더더구나 쑥스러운 일이다. 개정판이긴 해도, 이미 초판을 발행한 지 7년이나 됐으니 사람들에게 새삼스레 내미는 것도 멋쩍은 일인 데다가 정말 대단한 베스트셀러라면 몇 십 년이 지나도 회자되기 마련이지만 그 정도로 특별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일을 여기서 그만둘 수도 없다. 이 일을 시작하자고 부추긴 그 친구의 본마음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나 역시 동의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 세상이 더불어 사랑 안에서 걸음을 옮겨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일치의 영성이라고도 부르는 포콜라레 영성은 공동 영성에 속한다. 개인 영성은 한 사람이 그와 하느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그런데 공동 영성은 혼자서 성덕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느님께 나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그래서 ‘형제는 하느님께 이르는 길’이라고 할 뿐 아니라 사랑을 실천한 경험담도 서로 나눈다. 비슷비슷한 우리의 일상에서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경험담이 어느 순간 우리 역시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 간의 사랑이 태어날 때까지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어찌 보면 일방적인 사랑은 일흔일곱 번이라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상대가 사랑을 알아듣고 사랑해 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무척 어렵고 오래 걸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공동 영성으로 우리가 함께 나아가지 않는다면 ‘새 하늘 새 땅’이란 요원할지도 모른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선포하신 것도 교회라는 공동체가 서로 사랑함으로써 성삼위의 모습을 닮아 세상을 비추기 바라신 때문이셨을 것이다. 그러니 교회 자체가 이미 공동 영성을 살아야 하는 곳이 아니겠는가.

풀 죽은 내 모습을 떨치고 다시 친구들과 함께 방법을 찾기로 한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기쁘게 끌어안는다. 사랑의 불길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무언가 태울 거리가 있어야 하니까. 피해 갈 수도 있는 고통이지만 도망가지 않고 직시하면서, 사람들이 함께 사랑할 수 있도록 작은 것이라도 자꾸만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런 비대면 시기에 책을 통해서라도 사랑하는 방법을 서로 나누는 일이야말로 공동 영성을 살고자 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마땅한 몫이기에!

장정애 (마리아고레띠·마리아 사업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