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희망 나침반을 주신 주님께 감사를 / 고영미

고영미(세라피나) 아동문학가
입력일 2020-12-21 수정일 2020-12-22 발행일 2020-12-25 제 3225호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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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기도하는 사람도 기도했던 사람도 모두 기억해 주신다. 나는 주님 기억 속에 한사람이란 걸 안다. 가끔 기도를 잊고 삶에서 멀어져도 주님 울타리 어딘가에서 서성인다는 걸 안다. 연말이면 성당에 빛나는 아기 예수 집이 반갑게 기다린다는 걸, 언제든 와서 마음을 기대고 찬미 드릴 수 있는 열린 주님의 집으로 부른다는 걸 안다. 혹여 삶의 울타리에서 길을 잃을 때도 잊지 않고 기다려주신다. 아마도 몸 한구석에 언제든 돌아올 나침반을 놓아 주신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벌써 십여 년 전 아버지가 매우 편찮으셔서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다. 이 병원 저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했지만, 서울성모병원에 와서야 어릴 적 아버지의 신앙 고백을 처음 들었다. 참으로 부지런해서 일하느라 자식 크는 것도 노는 것도 모르고 일만 열심히 하셨던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몸 누일 병원을 찾고서야 주님 품에 안기며 어릴 적 아름다웠던 평화를 찾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며 신통하다는 약은 모조리 섭렵하고 성당에 다니며 도마라는 세례명도 기억에서 찾아냈다. 누이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건강도 찾고 일상으로 돌아와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리며 사회인으로 사느라 주님과 멀어졌어도 마지막 가는 시기에 주님을 만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것도 새내기 믿음을 가진 막 세례받은 딸 세라피나로 인해 매일 기도하고 성령이 함께하는 행복한 병원 생활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주님은 오래도록 방황하던 자식도 내치지 않고 안아주셨다.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아 어렵다던 환자를 일 년간 삶을 연장하며 주님과 함께할 시간을 선물로 주셨다.

가장 큰 변화는 아버지가 먼저 미사 드리러 가자 하고 미사가 없어도 휠체어에 앉아 성모님 앞에서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누구보다 기쁘고 환한 표정으로 미사를 드렸다. 날마다 기쁘게 평화로운 어릴 적 도마로 돌아간 것처럼 감사의 날을 맞이했다. 주님의 이끄심으로 주님 사랑으로 희망 나침반이 표시하는 대로 하루하루 하느님 나라에 여행 갈 준비를 했다.

매일 준주성범을 읽고 묵상하고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했던지 주님만 아는 금쪽같은 시간이었다. 사소한 하루가 감사하고 고맙고 날마다 은총이 내리는 날이었다.

간병을 하는 가족들도 매 순간 감사했다. 아버지가 슈크림 빵 하나를 겨우 드셔도 기쁠 만큼 작은 행복을 나누게 해 주셨다. 바쁜 아버지와 같이하는 시간이 많지 않았던 지난날을 보상하듯 아버지와 추억을 쌓는 날들이 간병에 힘든 줄도 모르고 집으로 오가는 차 안에서 감사기도를 잊지 않았다.

매일 병상을 돌며 힘을 주시던 신부님의 기도와 말씀까지 덤으로 얻은 시간. 멀리서도 늘 지켜주시는 주님 그 영광을 우리 가운데 느끼게 해 주시며 나와 함께하시고 기쁨과 기적을 알게 하시는 주님. 치유와 회복의 은총 속에 오늘도 길 잃은 이를 위해 두리번거리실 주님에게 평화를 드린다.

지난 가을 아버지 도마의 묘지에는 고개 숙인 보랏빛 제비꽃이 가득 피었다. 아버지 도마가 기도하듯이 손 모은 제비꽃이 주님을 마주하고 있었다. 고운 햇살을 제대 삼아 아름다운 새소리와 풀벌레와 작은 미사를 드리며 주님 손 어루만졌다. 그리고 드디어 만났다고 반갑게 만났다고 서로를 토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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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미(세라피나) 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