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팬데믹 시대, 판공성사는 어떻게?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0-12-15 수정일 2020-12-15 발행일 2020-12-20 제 3224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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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 우려 제거하고 사목적 배려 제공해야
비대면으로 불가능한 성사 별도 환기장치 설치하거나 넓은 임시 고해소 활용 등 감염 예방 위한 조치 필요
제때 성사 받는 것이 좋지만 기간 내에 고해성사 못해도 지나친 죄책감 갖지 말고 평소 기도·신앙생활 점검하길

최근 김 베드로(가명)씨는 마음이 무겁다. 대림 시기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 고해성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사가 중단됐던 지난 사순 시기에는 일괄 사죄 예식으로 판공을 대신했지만, 본당 사무실에 문의해 보니 올해는 본당에서 개별적으로 고해성사를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김씨는 밀폐된 공간이고,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이용하는 고해소가 아무래도 염려스럽다. 환기가 잘 되지 않는 공간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전염됐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천주교 집안 모태신앙인 김씨는 혼자라면 감염 우려보다 고해성사 의무가 우선이라고 생각하지만, 함께 살고 있는 노년에 접어든 부모님과 어린 자녀가 마음에 걸린다.

코로나19 팬데믹에 판공을 맞고 있는 지금, 고해성사에 대한 고민은 비단 김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감염병이 확산세를 띠고 있는 상황 속에서 고해성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 가도 안 가도 찜찜한 고해소, 비대면은 안 될까?

팬데믹에 두 번째 맞는 판공이지만, 신자들에게 이번 성탄판공은 지난 사순판공과는 다르다. 지난 사순 시기에는 한국교회 전체가 미사를 중단해 성당을 찾아 미사 전후로 고해성사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이번 대림 시기 중에는 미사가 봉헌되는 본당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고해성사를 못했을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게다가 고해성사는 단순히 죄가 많은 사람에게만 필요한 성사가 아니다. 신자들이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비춰 보고, 하느님과 교회와 사람들과의 틀어진 관계를 올바른 관계로 되돌리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성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가톨릭교회는 박해시대부터 내려오는 판공(辦功 혹은 判功)의 전통을 이어 신자들이 1년에 2회 고해성사를 할 수 있도록 독려해 온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많은 이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고해성사를 비대면으로 할 수는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안 된다. 고해성사가 그저 개인적인 참회나 고해가 아니라 ‘성사’여서 그렇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교회에, 특별히 전례 행위 안에 계신다”고 가르치는데, 구체적으로 집전자의 인격 안에 현존함을 전하고 있다.(「전례헌장」 7항) 즉 사제의 인격 안에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고해하는 사람의 인격이 실제로 만나 고백하고, 사죄를 받는 것이 고해성사인 것이다. 여기서 인격이란 영혼과 육신의 합일체인 인간 그 자체를 의미하는 말이다. 전화나 화상통화로는 육신과 육신이 실제로 만나게 할 수는 없다.

칠성사 중 하나인 고해성사가 거행되는 본래 장소는 성당 혹은 경당이다. 교회법은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고해소 밖에서는 고백을 듣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제964조) 물론 코로나19가 공동체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고해소’라는 장소가 고수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해성사에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지난 사순 시기 집전됐던 일괄 사죄 형태 고해성사도 성당에서 사제와 신자가 직접 만나게 되고 나서야 가능했다. 물론 일괄 사죄도 예외적인 형태의 고해성사로, 원칙적으로는 개별적인 고해성사가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하는 유일한 정상적 방식’(교회법 제960조)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미사 중단이라는 중대한 사안이 있었기에 각 교구장 주교의 판단하에 가능했던 것이다. 일괄 사죄는 통회와 고백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용서를 청하고 풀어야 할 부분까지도 묻어 넘어갈 수 있어, 일괄 사죄를 쉽게 허용하는 것은 도리어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해가 될 우려도 있다.

서울대교구는 상설고해소 운영을 재개하기 위해 고해소에 감염 예방 시설을 설치했다. 사진은 지난 10월 감염 예방 시설을 전문가와 함께 점검하는 모습.

서울 방화3동 성당은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야외고해소를 설치해 지난 6월 21일부터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야외고해소에서 고해성사 중인 한 신자.

■ ‘찜찜하지 않은’ 고해성사를 위해

이렇게 대면으로만 고해성사를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고해소에서 전염될 우려를 줄이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교구는 명동성당 옛 계성여고 자리에 있는 상설고해소에 감염 예방 시설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관리국은 고해소 내 사제석과 신자석에 냉·난방 환기 시스템을 분리해 사제와 신자 사이에 감염 경로를 차단하고, 고해성사와 고해성사 사이에 고해소를 소독해 신자 간 감염도 예방하고 있다. 서울 성수동본당 등 본당도 고해소에 환기장치를 설치하고 고해성사 사이에 소독작업을 하고 있다.

좁고 밀폐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원교구 안성 대천동본당을 비롯한 많은 본당들은 고해소 대신 유아실이나 사제 집무실 등 비교적 넓은 공간을 임시 고해소로 이용하고 있다. 대천동본당은 성당 출입자 전원에 대해 소독을 실시하고 임시 고해소에 공간살균기를 비치하는 등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서울 방화3동본당은 아예 감염 우려가 적은 야외에 고해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미국에서는 드라이브스루 형태로 고해성사를 하는 등 감염을 막으면서도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서울대교구 관리국장 김한석 신부는 “고해성사는 어쨌든 만나야 할 수 있기 때문에 교회의 배려가 필요하다”며 “고해소의 환기시설 설치로 신부님들도 신자들도 안전하게 고해성사를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환기시설을 설치한 서울 성수동본당 신자인 김연순(가브리엘라·57)씨는 “본당 고해소에 환기장치를 설치하면서 불안감이 많이 해소됐다”며 “이번 판공 기간에 안심하고 고해성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대면으로 이뤄져야 하는 고해성사를 위해선 감염 예방을 위한 다양한 조치가 필요하다.

■ 판공성사, 성탄 이후에도 가능

그러나 당장 모든 성당의 고해소를 방역에 적합하게 개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고 있어, 예년 판공 기간만큼 많은 신자들이 한 번에 고해성사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이번 성탄 전에 모든 신자가 고해성사를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다. 이에 사목자들은 성탄 전에 고해성사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죄책감이나 ‘찜찜함’을 느끼지 않길 당부하고 있다.

주교회의는 2015년 추계 정기총회를 통해 판공성사 기간 이후에 고해성사를 하는 신자들도 판공성사를 한 것으로 인정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본당에서 정한 판공성사 기간에 성사를 받지 못하는 상황과 맞닥뜨릴 때 큰 부담감을 갖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춘천교구의 경우 신자들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구체적으로 이번 성탄 판공성사 기간을 2021년 1월 31일까지 연장한다는 공문을 내기도 했다.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는 “고해성사는 자기 영성상태를 확인하는 영적 의미가 크기 때문에 판공 기간 중 고해성사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못했다고 해서 지나치게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코로나19로 고해성사가 쉽지 않지만, 아침·저녁기도와 삼종기도 등 시간전례에 참여하고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개인의 신앙을 더 성숙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