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장미꽃 십자가 추억제 / 박제천

박제천(아우구스티노) 시인
입력일 2020-11-24 수정일 2020-11-24 발행일 2020-11-29 제 3221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T. S. 엘리엇은 ‘재의 수요일’에서 한 송이 장미가 보여 주는 하느님의 섭리를 읽고 있다. “이 하나의 장미가/ 이제는 동산이다/ 모든 사랑이 끝나는 곳/ 미흡한 사랑의/ 고뇌와 만족된/ 사랑의 더 큰/ 고뇌를/ 종결시킨다/ 끝없는 것의 끝이요/ 끝 아닌 것으로의 여행/ 결론 없는/ 모든 것의 결론/ 낱말 없는 말이요/ 말 없는 낱말/ 모든 사랑이 끝나는/ 동산을 위해/ 성모에게 은총을.” 한 사람의 회의론자가 영원하고 초월적인 세계를 마음에 받아들임으로써 신의 세계로 나아가고, 그 권능을 중개한 성모 마리아를 찬양한 작품이다.

나는 이 작품을 모태 신앙인 아내의 권유로 가톨릭에 입문할 때 처음 읽었다. 가톨릭 성인전을 몇 번이고 숙독 끝에 아우구스티노란 본명을 받았다. 견진성사의 대부는 성찬경 시인이 맡아 주셨다. 1987년에는 아내인 마틸다와 혼인 성사를 받았다. 이때 김형영 시인과 대학 후배인 정채봉 작가가 증인을 섰고, 김여정 선생이 하객으로 찾아와 주셨다.

2005년, 아내가 5년여의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등단 40년 기념으로 박제천 전집 전 5권을 간행해 6월 27일 서울 종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축하연을 가진 지 사흘 뒤인 7월 1일의 일이다. 아내의 사후에 나 역시 두어 달여 병석에 눕고 말았다. 아내 생전에 전집을 출간하기 위해 무리를 했기 때문이다. 이때의 슬픔을 기록한 작품들은 2007년에 발간한 제11번째 시집 「아,」에 수록되었다. 시집 서문에 적어놓은 소회를 보자.

“‘아’는 無(무)의 산스크리트어 발음(A)이다. 2005년, 아내가 오랜 투병 끝에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마음만 한자리에 서성이다가 찾아낸 말, 참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無字 話頭(무자 화두)를 다시 만났다. 요즘의 내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아,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이다. … 더 이상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으랴.”

아내가 저세상으로 간 이후, 서울 방이동성당에 찾아다니던 발길이 자꾸 끊어졌다. 아들과 딸이 결혼 예식을 치루고, 아내의 고별식을 가진 곳이었다. 그 때문에 성당을 찾을 때마다 갖가지 추억이 꼬리를 물고, 슬픔이 복받쳐 견디기가 어려웠다. 이때 쓴 작품이 ‘장미꽃 십자가’다.

“열 송이 스무 송이의 꽃이 아니라,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나는/ 장미꽃을 아시는지요// 동이 트자마자/ 온몸에 은빛 바늘 가시를 달고,/ 솟아오르는 붉디붉은 새벽노을빛 꽃송이를 아시는지요// 은빛 바늘 사이로 붉은 피가 솟아나오고/ 붉은 피 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금빛 햇빛이/ 너무도 눈부셔서 바라볼 수가 없는/ 장미꽃 십자가의 얼굴을 아시는지요// 눈이 마주칠 적마다/ 내 몸의 구석구석에 덕지덕지 딱지를 이룬 죄의 고름/ 내 안의 핏줄마다 덩이덩이 엉겨 붙은 고통의 응어리가/ 장미빛으로 풀려나가는/ 장미꽃 십자가의 눈빛을 아시는지요// 열 송이 스무 송이 꽃의 눈빛이 아니라, 온몸이/ 해의 눈빛으로 빛나는/ 장미꽃 십자가를 아시는지요// 그 얼굴 떠오를 적마다 우리 모두/ 손길이 닿는 곳마다/ 온몸의 수액이 순정한 피로 넘쳐나고/ 온몸 온마음의 어둠이 사랑의 햇빛으로 솟아나는/ 장미꽃을 심으세요/ 우리 모두 마음마다 장미꽃 십자가를 보여 주세요.”(‘장미꽃 십자가’ 전문)

충남 천안공원 아내의 묘역에 새겨 넣은 이 작품은 처음 만났던 엘리엇의 ‘장미’에 화답삼아 쓴 것이다. 그 후 2015년에 마틸다에게 바치는 연가곡 시집 「마틸다」를 출간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나만의 추억제였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제천(아우구스티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