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누구의 편도 아닌 시간 / 황소희

황소희(안젤라) (사)코리아연구원 객원연구원
입력일 2020-11-10 수정일 2020-11-10 발행일 2020-11-15 제 321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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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북한붕괴론이 암암리에 퍼졌던 적이 있다. 동구권 공산주의 블록이 무너지고,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도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린 체제 존망이 걸린 경제위기를 맞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굶주림을 이기지 못한 북한 주민의 대규모 탈북이 나타났고, 꽃제비라 불리는 어린 부랑아의 구걸하는 모습이 국내 언론에 풀리기도 하였다. 배급제가 망가져 식량을 자구적으로 구하던 북한 주민이 장마당(시장)을 형성했다는 소식은 이제 북한에도 ‘아래로부터 혁명’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다는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북한이 무너질 수 있다는 기대는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인도주의적 대북 지원조차 ‘퍼주기’라고 비판한 프레임(frame)이다. 이 프레임의 골자는 내버려 두면 북한 체제가 붕괴했을 텐데 굳이 북한을 지원해 소생시켰다는 점, 여기에 더해 북한의 지속적인 핵 개발과 미사일 실험에 남한 지원이 흘러 들어갔다는 점이다. 북한에 대한 지원과 북한 핵 개발 사이 인과관계를 명확히 규명할 수 없음에도 이 퍼주기 프레임은 한국사회 집단인식에 꽤 강력하게 작동했다. 이 프레임이 효과적이던 까닭은 북한이 무너질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위기가 사실상 1980년대 후반부터 이미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30년이 지난 지금도 북한은 여전히 생존 중이다.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영역인 권력 세습을 3대에 걸쳐 성공적으로 이뤄냈고, 아래로부터 혁명의 단초라 여겨졌던 장마당과 시장화, 더 나아가 자본가 등장은 북한사회에서 일상 영역에 자리 잡았다. 한국에 오는 북한이탈주민 수가 꾸준하지만, 탈북 이유는 식량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자녀교육과 자유로운 문화생활 향유 등 이전보다 다변화됐다. 최근 남한 측 방문객만 있던 판문점에 북한 주민들 다수가 옷을 잘 차려입고 나오기도 했다. 이제 남한에 자신들을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다는 것, 체제에 대한 일종의 자신감이다.

기다리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궤멸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 북한과 교류조차 불편해하던 이들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위기 상황이던 그 꽤 긴 시간 동안 북한은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나갔고, 단백질 부족과 균형 잡힌 영양 섭취를 걱정한다. 북한 핵이 고도화됐지만, 이에 대응한 국제제재도 미시적인 부분까지 강화돼 북한 경제 발전을 옥죄고 있다. 시간은 남한 편도 북한 편도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던 시간은 우리가 북한과 평화를 이루기 위해 투입했어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러니 더는 서로 심판하지 맙시다. 오히려 형제 앞에 장애물이나 걸림돌을 놓지 않겠다고 결심하십시오.”(로마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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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희(안젤라) (사)코리아연구원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