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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상임대표 안영배 신부

정리 정정호 기자
입력일 2020-11-03 수정일 2020-11-04 발행일 2020-11-08 제 3218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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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질서 보전, 불편함 감수하더라도 지켜내야 할 가치”
갈수록 힘든 농촌 현실 속에서 생명농업 지키기 더욱 어려워
농업이 지닌 공익성 인식하고 ‘공익형 직불제’ 확대하는 등 농민 기본소득 위한 제도 절실
생태환경에 대한 사명감으로 농업 바라보는 시각 가져야
농민-소비자 함께 살 수 있는 건강한 사회 만들어 가도록 교회가 앞장설 수 있게 되길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이다. 국민들에게 농업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시키고자 만든 법정기념일이다. 농업인의 날을 맞아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상임대표이자 안동교구 농민사목 전담 안영배 신부를 만났다.

◎대담: 방준식 편집팀장

◎일시: 2020년 10월 31일

◎장소: 안동 우리농 목성동직매장

안영배 신부는 “더 많은 신자들이 생명농업에 관심을 갖고, 창조질서 보전을 위한 생태적 감수성을 높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방준식 편집팀장(이하 방 팀장): 먼저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와 가톨릭농민회를 중심으로 한 농민사목에 대해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영배 신부(이하 안 신부): 가톨릭농민회는 1966년 가톨릭농촌청년회로 시작됐습니다. 공업화로 인한 농촌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이농현상 등에 대처해 생겨났고, 1972년에는 한국가톨릭농민회로 개칭하면서 열악했던 농민인권, 농촌사회 민주화를 위해 앞장서 왔습니다. 가톨릭농민회 주도로 신앙을 초월해 농민들과 연대해 왔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생명농업에 대한 관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1990년 전국농민회가 따로 결성되면서부터 가톨릭농민회는 본격적인 생명공동체 운동으로 전환하게 됐습니다. 이와 더불어 1994년 수입농정(農政) 시대에 맞서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이하 우리농)를 창립해 가톨릭농민회와 함께 위기에 빠진 농촌을 살리기 위한 사목을 적극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농민들과 도시 소비자들이 함께 생명공동체를 지향하며 살아가자는 뜻으로 농민들 손을 잡아주고 공동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책임의식을 지니며 살아가는 운동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방 팀장: 현재 우리나라 농업·농촌 현실은 어떠한지요? 고령화를 비롯해 많은 어려움이 있는 줄로 압니다. 이런 상황에서 생명농업은 어려움이 더 클 것 같습니다.

▲안 신부: 당장 10년 뒤, 20년 뒤에 농사지을 사람이 있겠느냐는 질문에 누구도 희망적인 답을 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도시 가구 소득 대비 농가 소득은 60%, 농업인구는 220만 명에 불과한데다, 절반 가까이가 65세 이상입니다. 농촌사회가 실제 거주하는 농민들 힘만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고,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도 굉장히 큰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생명농업은 화학적 농법에 의존하지 않고 생명의 순환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노동과 실패를 감수하면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고령의 농민들이 지금까지 해오던 관행농을 탈피해 생명농업으로 전환하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안동교구 나섬식생활교육원 진행하는 어린이 농촌 체험활동에 참가한 어린이들. 나섬식생활교육원 제공

-방 팀장: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도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안 신부: 코로나19로 인해 전국 본당 우리농 나눔터와 학교급식, 공공급식 매출이 막혀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또 외식이 줄었다고 하지만 가정에서라도 분명 먹거리 소비는 이뤄졌을 텐데, 농산물 소비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식생활이 변한 것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생산과 유통, 소비 전체가 대기업 주도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논밭이라는 생산현장과 식탁이라는 소비현장의 관계를 회복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생산과 소비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죠. 우리농이 오래전부터 시도해 왔던 직거래와 교류도 그 멀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나가는 일입니다.

-방 팀장: 어려운 농업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우선과제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인식변화와 더불어 제도·정책적 지원 또한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안 신부: 지금까지 우리는 농업을 하나의 산업으로, 경제적 관점에서 주로 바라봤습니다. 저렴하면 되고, 맛있으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저렴한 것을 외국에서 사오면 되지, 굳이 비싸고 힘들게 왜 여기서 농사를 짓느냐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농촌·농업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역할들이 있습니다.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 외에도 건강한 토양과 수자원관리, 공기정화 등 생태환경적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연경관을 보존하고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이러한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 공익적 기능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농업을 공익적인 다양한 역할을 하는 공공재로 바라본다면, 거기에 책임을 갖고 일하는 농민들 삶을 보장해 주는 ‘기본소득’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농업이 지닌 가치들을 지키고, 농촌사회 붕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기본소득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 생계가 힘든 상황에서 누가 농촌을 지켜나갈 수 있겠습니까? 더 나아가 농업환경에 대한 책임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는 농민들에 대해선 ‘공익형 직불제’ 같은 제도를 확대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환경을 보존해 나가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방 팀장: 환경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 만큼 생명농업의 중요성도 더욱 커졌다 볼 수 있습니다. 생명농업을 확산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요?

▲안 신부: 가톨릭농민회와 우리농이 생산과 나눔 활동을 오랫동안 함께 해오고 있지만 아직 교회 내 인식이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농약 안 치고 좋은 것, 비싼 것 찾는 사람들’로만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왜 가톨릭농민들이 이렇게 힘들게 농사짓는지 그 안에 담긴 가치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생명농업은 환경을 되살리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어우러지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교회가 나서야 합니다. 교회 울타리를 넘어 지역사회와 연대하는 개방성도 필요합니다.

-방 팀장: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과 창조질서를 보전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생명농업과 창조질서 보전을 위한 당부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 신부: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합니다. 불우한 농민을 위한 나눔이 아니라, 생태환경에 대한 책임과 사명감으로 바라봤으면 합니다. 생명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곳이 농촌입니다. 논밭에 손과 발을 담가보고, 직접 보고 느끼며 대지 안에 살아 움직이는 많은 생명들을 오감을 통해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태적 감수성을 회복할 수 있는 교육과 체험들이 다양하게 이뤄지길 바랍니다.

또한 최근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긴 했지만,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들을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강의를 해보면, 내용에는 공감하지만 막상 실천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 안에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죠. 그것을 감수하면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가치들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필요합니다. 건전한 시민의식, 신앙인으로서의 가치, 복음정신을 찾아야 합니다. 신앙인이기에 해나갈 수 있는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10월 31일 안동 우리농 목성동직매장에서 만나 대담 중인 안영배 신부(왼쪽)와 방준식 편집팀장.

정리 정정호 기자 pius@catimes.kr